팀 회식 대신 영화를 보기로 하고, 별 생각없이. '이제 트란 안 훙이 액션영화도 만드나'라며 별 기대없이 본 영화였습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사전지식도 전무한 상태였지요. 그래서 처음 보기 시작할 때의 초점은, 1. 이병헌은 얼마나 영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할까 2. 과연 셋중 누가 주인공일까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트란 안 훙. 그 이름을 너무 우습게 보았던 것이지요.^^ 역시나 매캐한 지식인의 안개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냈습니다. 뭐 어느정도는 'Ciclo'에서 짐작한 바 있지만, 이렇게까지 현학적이 될 줄은 몰랐었어요. 어느 학문에서건 깊이있게 들어가고 내공이 생기면 대중과 유리되기 마련이지만, 트란 안 훙의 경우는 보다 서양적인 - 공격적이고 뚜렷한 비유의 캐릭터로 바뀌고 있어서, 오히려 '그린파파야향기'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부드러운 은/비유의 장기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파파야에서 뻗어나오는, 적지만 정제된 탁월한 은/비유들은 정말 멋졌는데 말이죠.
이 영화에서의 은/비유는 크게 두가지입니다. (이렇게 싸잡아 얘기할 수 있을만큼 뚜렷하지요.)
1. 기독교, 희랍신화
2. 들뢰즈의 사상을 위시한 20세기 근대유럽의 '몸'담론
사실, 정화와 속죄, 구원과 suffering을 이야기할 때, 기독교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 만큼 편한 건 없습니다. 숭고하고 드라마틱하며 일반인들이 쉽게 알아먹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트란 안 훙은 거기에 프랑스 근현대철학을 섞어 냉소적으로 현대화합니다. (트란 안 훙은 프랑스인^^) 냉소적이라는 것은, 이 영화가 크리스천의 영화는 아니라는 뜻이지요, 심지어 '예수이야기'도 아닙니다. (평소 Djuna의 영화평 을 좋아하는데, 이번엔 쵸큼 잘못짚으신 듯)
-------- 생각나는대로 쭉쭉 적습니다.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
아들 시타오가 예수라면,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분이니, 이 영화에서도 '말씀'으로만 등장합니다. 게다가 'nothing'으로부터 세계제일의 '제약회사'를 '창조'한 회장입니다. 너무 재밌죠^^ 화학이라는 logic으로 치유하시는 겁니다. 아들이 자신의 몸을 기관으로 삼아 병을 소멸시키는 블랙홀이라면, 그 아버지는 logic으로 대상에 '들어가' 치유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인거죠. 고통의 위치가 다릅니다. 시타오는 고통의 위치를 이동시키지만, 아버지는 고통의 위치 자체를 소멸시키는 사람입니다.
여기부터 '몸' 담론이 시작됩니다. '몸'의 기능.
영화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이미지는 단연 F.Bacon의 회화입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 항상 붙어있는 것이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라는 책이죠. 들뢰즈는 베이컨의 그림을 인용하며, 본질과 기능이 없는 덩어리로써의 몸 - '기관없는 신체'를 이야기합니다.
(왼쪽부터 수동포, 클라인, 시타오^^)
생각해보면, 베이컨의 그림과 "이 포도주는 나의 피요, 이 빵은 나의 살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아주 묘하게 이어집니다. 빵/피에는 기관도 기능도 인격도 없잖아요. 단순히 '덩어리'인거죠. 그런데, 그게 정화를 합니다. (조쉬 하트넷은 한글로 '몸'이라고 번역되어 나오는 모든 부분에서, 'body' 대신 'flesh'를 사용합니다.) 시타오의 몸도 빵이고 피입니다. 하지만, 시타오라는 빵은 고통을 느낍니다. 고통을 느끼는 빵. 여기에서 실존주의까지 넘어가면 걷잡을 수 없으니 더이상 뻗어나가지 않겠습니다.^^
감독은 처음에 클라인(조쉬 하트넷)이 필리핀에 가자마자 노골적으로 스포일러를 뿌립니다. 선술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무희들의 누드댄스^^ 이제부턴 '몸' 이야기라우~ 라는 감독의 개구진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이제 클라인의 이야기를 해보죠.
클라인은 시타오를 찾아갑니다. 무엇을 위해서라는 건 없습니다. 영화에서도 딱히 이유랄건 없어보여요. 회장의 입장에서도 딱히 그를 지목할 이유는 없었지요. 하지만 감독에게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가짜빵-연쇄살인범을 경험해 본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시타오는 자신의 몸을 정화의 도구로 삼지만, 연쇄살인범은 다른이의 몸으로 '몸을 통한 정화/구원'을 '묘사'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사이비 종교를 나타낸다고 하면 그건 지나친 비약입니다. 그는 나름대로 괜찮은 인물이에요. 사실 시타오보다 더 담론을 풍부하게 해줍니다.
그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입니다. 굳이 갖다붙이자면 '유다의 패러독스'를 갖고 있는 사람이지요. 자신의 작업(살인과 예술품제작)이 자신을 죽게하는 일임을 애초에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만이 정화의 몸을 갖고 태어나는(신성모독이 아니길, 아멘) 것이므로 연쇄살인범은 '정화의 몸없음'으로 계속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제 딴에 어째보고자 노력해 본 거지요. 'Jesus is in Agony, til the end of the World' 영화의 첫 대사이자 감독의 세계관이 담겨 있는 연쇄살인범의 대사입니다. 어떻게 보면 불쌍한 인물입니다.
예술은 인간의 한계를 스스로 확인하고 절망하기 위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키에르케고르? ^^)
아, 클라인 이야기를 하다 좀 샜군요. 다시 클라인 이야기.
클라인은 사실 투명하고 나약하고 의존적입니다. 역할도 수동적이고 특별히 한 일도 없습니다. 아 하나 있지요. 살인범을 '육체'로 되돌려준 것. 머리를 뗀 것은 '사람'을 '몸뚱아리'로 변화시켜주는 의식과도 같은 겁니다. btw, 클라인은 왜 그렇게 열정적이 되었던 걸까요? 그가 흥분하거나 고민할 의미도 딱히 없습니다. 그의 트라우마가 그렇게 만들었다구요? 적어도 플롯만 보자면 그의 트라우마를 건드릴 만큼 시타오는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고아원을 지원하다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그게 전부인데요. 막 기독교적으로 해석해보면 끼워맞출 수는 있습니다. 그가 신탁을 받은 천사라던지 뭐 그런걸 갖다 붙이면 안될것도 없지요. 하지만 그건 넌센스에요.
그럼. 이제 둘. 수동포와 감독 와이프(릴리).^^
이 둘은 조금 범주가 다릅니다. 이들을 기독교에 묶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가능하긴 하지만 무리한 시도입니다. 수동포와 릴리는 모두 폐쇄적인 인물로 각각 한번씩 시타오와 엮이게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둘이 사실은 하나로 읽혀야 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합니다. 릴리는 양의 인격,수동포는 음의 인격. 뭐 그렇게. (그림 그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위에서 장난처럼 말한대로 세 명의 주인공은 베이컨 삼면화의 한 대응씩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영화에는 그렇게 생각할 어떤 단서도 없습니다.)
갖다 붙일려면 끝도 없지만, 둘은 계속 소통에 난항을 겪습니다. (도입부에서의 베드신은 소통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시타오라는 구원의 매개를 통해서 결말부에 합일을 이루게 된달까요. (파파야식 결말이라면, 엔딩에서 릴리가 임신이라도^^) 아뭏든, 시타오의 죽음 덕분에 둘은 서로를 의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의 예수는, 마치 비트겐슈타인의 사다리처럼. 목적지에 도달한 이후엔 치워져야 하는 대상인겁니다. 또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서로를 구원해야 하는 것이다, 신은 매개만 할 뿐이다" 뭐 이런 메시지겠죠. 사실 요것때문에 기독교협회에서 또 뭐라고 할까 걱정이에요.
그리고... 아 시타오. 뭐 할말 없어요, 캐릭터도 배우도 - 비중도 개런티도 많지만, 평면적인 인물이어서 재미가 없습니다. 원래 완벽한 건 재미가 없죠. btw, 그가 예수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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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화치고는 읽기가 쉽고, 가슴 따듯한 공익광고같은 메시지라 아주 훌륭한 영화라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거장의 범작이니 일반적인 영화들에 비해선 괜찮은 퀄리티입니다. 나름 점수를 준다면 B+정도? ^^ 성찬식을 들뢰즈와 엮어 이야기를 만들어 낸 방식은 대단히 창의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감독이 지금처럼 구조적이고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그의 직관에 비교해볼 때 - 그렇게 대단한 소질이 있어보이진 않아요. 이 영화는 '파파야'보다 '매트릭스'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데, 트란 안 훙이 워쇼스키처럼 액션을 잘 사용할 자신이 없다면, 이런 천착은 지나치게 깊이 빠지 말기를 바랍니다. 라디오헤드는 괜찮지만 다음영화에도 와이프를 주연여배우로 캐스팅한다면... 진심으로 말리고 싶다는. ^^
ps.
1. 왜 겨드랑이를 물었을까요?
2. 첫 도입("2년후"가 나오기 전까지)은 정말 최고. 스타일리쉬했음.
3. 갑자기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떠오르는... 메시지는 그처럼 '유치하지 않게' 던져야 하는게지요.
4. 이들보다 좀 더 똑똑하고 교육정도가 높은 배우가 있어서, 감독의 의도까지 확실히 이해하고 연기했다면 더 좋은 영화가 나왔을까요? 아님 그 반대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