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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r 만년필 -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ARTBRAIN 2021. 7. 30. 03:12

짐을 정리하다가, 잃어버린 줄 알았던 만년필을 발견했어. 누들러 만년필, 풀네임은 'Noodlers FLEX NIB Fountain Pen, Piston Fill, Clear Demo' (아마존 상품명)

오른쪽은 아마존에서 캡쳐. 원래도 좀 꾀죄죄했어.

2~3년 동안 잉크가 채워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나 봐. 놀랍게도 잉크가 덜 굳은 상태로 발견되었어. 차폐성 인정! 하지만 원래는 투명했던 바디가 완전히 황변한 데다가, 원래 빨간 잉크 전용으로 쓰던 놈이라 붉은색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어. 그닥 애정을 주지 않은 펜이라서 크게 기대하지 않고 30분 동안 설렁설렁 청소하고 다시 잉크를 채워 넣은 상태야. 완전 분해하고 닦고 싶은데, 어휴~ 어찌나 찌꺼기가 많이 나오는지! 배럴을 헹구고 헹궈도 끊임없이 검은색 가루가 나오더라구. 그냥 스크류에 기름칠만 좀 하고 써보려고.

이 펜을 산 건 역시나 아마존 블랙 프라이데이. 누들러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 데다가 가격도 10 달러 정도여서 부담없이 질렀지. 당시에는 낭창낭창한 플렉스 닙을 좋아했던 데다가 닙의 모양이 특이해서 호기심이 동했지.

얼룩덜룩. 확대하느라 화질도 엉망.

브리더 홀(breather hole)이 없고, slit이 닙 전체를 가로지르는 이런 모양새는 이제껏 본 적이 없었어. "저렇게 만들어도 되나? 쉽게 망가지지 않을까?" 신기하잖아^^ 투박하긴 해도 지오메트릭한 폰트 세공이 매력적이기도 했고. 

퀄리티를 기대하고 산 건 아니라서 별 기대를 안했는데, 받았을 때 느낌이 기대 이하였어. 생전 처음 맡는 불쾌한 냄새가 가득!

나중에 안 거지만, Noodlers Ink co.는 미국의 잉크 회사고, 만년필은 인도에서 만드는데, 바디를 만들 때 독특한 수지 첨가제를 넣는다더라구. 그게 불쾌한 냄새의 원인이래. 이게... 생물에서 나는 냄새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계에서 나는 냄새도 아닌데... 오묘해. 새 자동차 시트 냄새를 100배쯤 증폭한 다음 10년 정도 썩힌 것 같은? ^^ 처음에 샀을 땐 일주일 정도 온갖 방법으로 냄새를 없애려 해봤는데 소용이 없었어. 산지 5~6년은 지난 거 같은데 여전히 냄새가 나. 손에도 배. ㅠㅠ

그런데, 신기한 게 - 대충 재활하고 다시 써 보니, 당시 느낌보다 더 좋아졌어. 이 펜의 마지막 불꽃인가. ^^

슬릿이 닙을 반으로 가르고 있어서 엄청 낭창거릴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단단한 닙에 가깝고, 오직 힘으로 누른 만큼 정직하게 벌어지는 방식이더라구. 덕분에 두께가 적당히 조절되면서도 누를 때 반발력이 상당해. 잉크 흐름도 나쁘지 않은데, 머금는 게 아니라 흘리는 것에 가까워. 그래서 캡 안쪽에 잉크 얼룩이 쉽게 생겨. 그리고 아까 차폐성이 좋다고 했는데, 반대로 캡을 벗긴 채로 방치해 두면 금세 말라버려. 여러모로 신기한 펜이야.

크기는 미니 펜 레벨보다는 약간 두꺼운 정도고, 무게는 생긴 것처럼 가벼워. 그래도 밸런스는 나쁘지 않아서 매일 오래 쓰기에 적합한 것 같아. 캘리그래피하기에도 좋을 듯. 펜 끝이 부드럽지는 않지만 긁는 느낌은 아니고, 강약 조절도 꽤 자연스러워.

냄새만 안나면 좋겠는데!

그래도 한동안은 또 재밌게 갖고 놀겠지만, 그다지 애정이 생기진 않고. 나중에 여유가 있으면 이 회사 제품 중 불투명한 놈으로다가 한 번쯤은 더 살 의향은 있어. 저렴한 가격에 flex nib을 테스트 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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