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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hao specialist - 현타오네, 대단해

ARTBRAIN 2021. 8. 25. 14:37

20년 넘게 만년필을 써 오면서 '필감은 가격과 비례한다'는 걸 체감했던지라, 한 번도 중국제 만년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어. 유명 모델을 카피한데다 너무 싼 가격이라 믿을만하지 않았거든. 이천 원 내외의 가격이 상식적인 수준이 아니잖아.

그런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 베스트펜에서 잉크를 사면서, 4500원짜리 진하오가 있길래 함께 주문했어. 알리에서 구하면 2000원 정도 선에서 살 수 있지만, 너무 싸니까 두 배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더라고. ^^

모델명은 진하오 스페셜리스트, F촉. 그레이 색상이야. 

크기비교 (좌) 진하오 스페셜리스트 (우) 세일러 시그마 슬림

사진이 어둡게 나왔는데, 실제로는 약간 어두운 중간 회색이야. 사진에 있는 세일러도 작은 펜이지만, 이것도 거의 같은 급의 크기이고, 시가형이라서 길이는 약간 더 길어. 배럴의 두께도 비슷하고. 

엇, 펜촉 이쁜데? 적당히 잘 말려 있고 세공도 우수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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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를 보면, 가로선와 세로선의 굵기 차이가 상당해

 

솔직히 좀 현타가 왔어. 그동안 난 왜 비싼 펜을 사 온 거지? 이 가격으로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거면, 왜 그동안 열배, 백배 가격으로 펜을 사 온 걸까? ^^

이 펜은 - 소위 '버터필감'이라고 하는 걸 확실히 보여주고 있어. 이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보다도 더 현타가 올 것 같아. 어떻게 4500원짜리 펜에서 이런 감촉이 나오지? 그냥 팁만 두껍고 크게 만들면 되는 게 아닐 텐데?

하지만, 필감이란 게 - 여러 개의 요소가 섞이며 종합적으로 느껴지는 거잖아. 그립감, 무게, 밸런스, 닙의 경도, 배럴의 감촉, 바디의 길이, 잉크의 흐름 등을 종합한 게 필감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펜은 필감이란 걸 '종이 위에서 미끄러지는' 느낌 하나로만 정의하고 그 방향으로만 몰두한 것 같아.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버터 필감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분명한 데피니션(?)이 있는 펜을 좋아하는데, 이 펜은 약간 수성펜 느낌이야. 제법 낭창해서 OMR 싸인펜 질감같아. 아니, 볼펜이 미끄러지는 느낌 정도로 좀 과하다 싶어. (이 정도면 왜 만년필을 쓰나 싶을 정도)

잉크는 다 다르지만, 모두 이로시주쿠라서 흐름은 비슷할 거야.


갖고 있는 펜 중에 잉크가 들어 있는 모델들과 비교를 해 봤어. 전부 F인데 두께 차이가 상당하지? 이건 펠리칸이 얇게 나오는 거고, 오퍼스88이 가장 기준이 되는 F일 거야. 보면 알겠지만, 진하오는 잉크의 농담이 심하게 드러나. 이런 농담의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난 이게 좀 거슬리거든. 흐름이 너무 좋은 것도 한몫하는 거 같아. 흐름이 너무 좋아. 좋다 못해 흘러. 캡을 닫고 잠깐 이동했는데, 캡 안에 잉크가 튀어 있어. 흐름을 지나치게 좋게 만들려다 보니 닙마름은 신경 쓰지 못한 거 같아. 

(좌) 선명한 사출자국과 나사산 앞의 유격 (우) 바디 마감을 볼로 막은 형태

마감에 관해서는 정말 할 말이 많아. 얼핏 보면 나무랄 데 없거든? 그런데 약간만 주의를 기울여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아. 그런데 쓰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까 패스. (보관할 때 항상 보이는 저 바디 끝의 볼 마감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걸까? ^^)


좀 더 써봐야 하겠지만, 커피값도 안되는 가격으로 이 정도의 품질을 쓸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것 같아. 

하지만 오래 쓰는 건 - 솔직히 기대하지 않고 있어. 가장 큰 불만은 잉크 흐름. 잉크가 너무 튀어서 금방 지저분해지고 관리도 어려울 것 같아. 아마 닙마름도 상당하겠지. 마감의 엉성함은... 쓸 때는 모르겠지만, 계속 눈에 밟히게 마련이고. ^^ 

무엇보다도, 창작자의 한 명으로써, 이런 모조품을 '가성비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쓰는 건 아닌 것 같아. 이 형태가 워낙 일반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짝퉁은 짝퉁이니까. 그런데 따지고 보면, 파일롯트나 세일러 등 일제는 모두 카피로 시작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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