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한 번 쓰고 싶은 내용이었어. 오랜만에 시간이 나서 간단히 적어볼까 해.
사람들이 키치(Kitsch)와 버내큘러(Vernacular)를 혼동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이게 적잖이 성가시거든. 상대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걸 바로잡아 주어야 더 나은 대화가 될 것 같다가도, 뭐 나만 제대로 알아들으면 된 거 아닌가, 걍 저렇게 평생 살라고 하자 싶기도 하고. ^^
더욱더 심각한 것은, 맞춤법처럼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서, "아닌데요, 그거 그런 뜻이 아닌데요" 하기에도 좀 애매하단 말이지. (불분명한 정의를 갖더라도 네 말은 틀림)
아무튼, 내가 알고 있는 범주 내에서 간단히 정리하려 해.
이렇게 구분하자 ;
Kitsch : 업자들의 모조품
Vernacular : 비전문가의 오리지널
뭐... 개운하진 않은데, 이게 제일 외우기 쉬운 것 같아.
키치는 업자들이 만든 B급 제품이고, 버내큘러는 일반인이 만든 오리지널 손맛.
내가 키치의 대표 작품(?)으로 여기는 게 왼쪽 이미지야. 아마 나이가 제법 있는 사람들은 택시나 버스 운전석 한구석에, 또는 룸미러에 대롱대롱 매달린 이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거야. 원본은 영국 화가 조슈아 레이놀즈의 '어린 사무엘'이라는 그림인데, 이건 사실 안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그림이고.
'어린 사무엘'이라는 그림을 본 누군가 (아마도 그림을 그려서 먹고사는 사람이었겠지)가 이걸 '아버지의 무사 귀환을 빌며 기도하는 자녀의 이미지'로 번안하여 그렸고, 우리나라에서는 직업 운전수들의 부적처럼 전파되었어.
오리지널리티를 누구도 묻지 않고, 생산과정의 특성상 B급 가치(상대적으로 저급한 퀄리티)를 띄는 생산물이 키치를 정의하는 가장 큰 개념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kitsch는 기본적으로 오리지널리티의 담론과 항상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현대로 오면서 그 개념(오리지널은 무엇인가)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여전히 '오리지널은 무엇인지 묻지 않겠다'는 전제는 유지하고 있어.
지금은 너무 성장해서 더 이상 '키치 예술가'라고 말하긴 애매하지만, 이 분야의 가장 유명한 예술가는 아무래도 제프쿤스.
우리가 흔히 '이발소 그림'이라고 부르는 스타일. 제프쿤스는 그런 '업자'들의 작업을 모방해서 성공한 사람인데 요즘 작업은 그런 Kitsch 한 맛은 없어도, 여전히 '오리지널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여러 작업에서 보여주고 있지.
반대로 버내큘러는, 찾으려고 맘만 먹으면 원작자를 찾을 수 있겠지만 굳이 원작자를 찾지 않아. 그 원작자의 '비전문성'이 버내큘러 디자인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원작자를 몰라야 오히려 속이 편해. 그래서 버내큘러의 담론은 '아트(또는 디자인)는 자생적인가', 또는 '예술가(디자이너)는 누구인가' 등과 연결되어 있어. 라따뚜이에서 말하는 'Anyone can cook'과 연결된 내용이지.
예술가나 디자이너 등 전문가가 없는 상황에서, 동네에서 글씨 좀 쓴다는 사람이나, 당장의 필요로 인해서 급하게 만들어지는 생산물을 버내큘러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키치와는 다르게 '훈련된 사람들과는 미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물이야. 키치는 오리지널을 따라가려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이고, 버내큘러는 내가 오리지널인데 내 눈엔 이게 좋아 라는 거지.
버내큘러는 필연적으로 기업에선 나오기 힘든 결과물이야. 디자이너를 뽑으면 안되거든. 아래 광고들을 봐. 서투름을 흉내 냈지만 몸에 밴 기본기는 드러날 수밖에 없지.
이 설명도 정확하다고 주장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틀리지는 않은' 내용이라고 자부하니까 - 헷갈리는 사람은 이 키워드만 기억해줘.
키치는 모조품, 버내큘러는 비전문가.
최소한 이것만 알고 있으면, 어디가서 뻘소리로 디자이너들 뒷목 잡게 하진 않을 거야. (너 말이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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