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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 of UX. 02 - “이게 더 예쁘군요”라는 디자인 피드백에 대한 옹호

Curious ARTBRAIN 2020. 12. 11. 13:44

이전에 RightBrain에 있을 때 쓴 글인데, 반가와서 여기에 옮겨. 약간만 고쳤어. 아마 2018년 글일 거야.

디자이너들은 항상 다양한 피드백을 마주하게 됩니다. 디자인은 사용자의 다양한 관점 – 경제성, 기능성, 심리성 등 – 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심도 깊은 대화와 피드백이 발생할 수 밖에 없죠. 하지만, 숱한 피드백 중 꽤나 성가신 유형의 피드백이 있습니다. 바로 “이게 더 예쁘네요” 피드백이죠. 발화자가 디자이너라면 그나마 좀 낫습니다. 서로 심미적인 속성을 이야기해도 되는 사이니까요. 하지만, 실제로 “예쁘네요” 피드백은 기획자로부터, 클라이언트로부터, 개발자로부터, 마케터로부터 더 많이 듣습니다.

토끼들끼리는 서로 귀엽다고 말해도 되는데 다른 동물들이 하면 안 되는 것처럼 - (C) Disney, Zootopia


뭐, 어느 정도는 자존심의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지가 뭔데 디자인에 대해서 예쁘다 안 예쁘다 하는 거지?”라는 식으로요. 하지만, 자존심을 차치하고서라도 다양한 관점을 수용/조정해야 하는 회의에서 누군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회의의 효율은 낮아지게 마련입니다. ‘예쁘다’는 계측하기 어렵고, 주관적이어서 논리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저해하기 때문입니다.

디자이너들 스스로도 회의 등에서 “예쁘다” 발언은 삼가는 편인데요. 대신 ‘저는 이게 더 마음에 들어요’라는 식으로 – 조금 낯간지럽긴 한데 - 주관적인 생각임을 뚜렷이 밝힌 후, 자신의 취향을 말하곤 하죠.

이런 불만 섞인 생각을 한참 하다 보니, ‘예쁘다’는 피드백을 좀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싶었습니다. 디자이너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예쁜 것을 만들고자 함”은 디자이너의 주요 동기 중 하나잖아요. ‘예쁘다’라는 표현이 커뮤니케이션 언어로 적당하지 않은 건 알겠는데, ‘예쁘다’가 거부되는 다른 원인도 있지 않을까 싶었죠.

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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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 ever follows Function.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Louis H. Sullivan의, 유명한 바우하우스 시대의 명제입니다. 기능을 따르는 형태는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으며, 심미성을 위해 별다른 장식을 추가할 ‘필요’가 없다는 선언입니다. 현대 디자인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이기도 하고, 공예시대와 현대 디자인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 말이지요. 훌륭한 선언이고 옳은 기준입니다. 하지만, ‘예쁘다’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이 명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기능을 따르는 형태가 디자인의 전부라고 말하기엔 좀 아쉬움이 있고, ‘예쁘다’는 속성은 그것보단 더 큰 범주일 테니까요.

Dieter Rams. Ein Stilraum - http://www.museumangewandtekunst.de

디터 람스는 ‘형태를 따르는 디자인’을 가장 잘 구현한 디자이너 중 한 명입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용성을 가져야 하고, 정직하면서도 야단스럽지 않은, 오래 지속되며, 디테일이 살아있고, 일관적이며, 환경친화적이며, 최소의 디자인만 추가된 디자인. ¹

그는 ‘수도사와 같은 엄숙함으로’ 디자인을 대하고 있습니다. 재료 고유의 색상, 혹은 제품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페인트만 쓰다 보니 그의 제품은 한결같이 흰색 혹은 베이지색이고, 장식이랄 것은 소리나 열이 빠져나올 수 있게 하는 천공이나 슬릿 뿐입니다. 손에 들고 쓰는 제품을 제외하고는 직육면체와 원기둥의 집합이고, 버튼의 위치는 조작하기 쉬우면서도 내부 배선을 가장 짧게 하는 위치에 배열되어 있습니다. 그의 제품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모두가 흠잡을 데 없는 완결성을 갖고 있지만, 위 사진처럼 모아보면, 이 역시 하나의 ‘스타일’처럼 보입니다.

* 사실, 디터 람스의 디자인 역시, 기능에 오롯이 봉사하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스타일처럼 보이는 거죠. 온전히 기능에만 봉사한다면, 축음기와 토스터가, 캠코더와 드라이어가 서로 비슷해 보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바우하우스 이전의 기계들이나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군수품들이 순수한 기능 기반의 디자인에 가깝죠. (물론 그들도 인간-취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합니다.)

또 하나의 예로서, 최근에 플랫폼엘에서 전시했던 ‘카럴 마르턴스 Karel Martens (링크)’의 전시도 참조할 만 합니다.

Karel Martens - https://dspncdn.com

위 작업에서, 그는 기계에 쓰인 부속의 모형을 가져와서 도형으로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바우하우스 시대의 세계관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죠. 기능을 위해서는 특정 ‘형태’가 필요하며, (즉, 그 형태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기능을 위해 부여한 형태 자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는 작업이지만, 동시에 이 작업은 바우하우스의 시대적 한계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바우하우스를 기점으로 디자인은 공예보다 산업에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디테일을 강조하는 공예의 문화에서, ‘기능 없이는 무엇도 추가하지 않는다.’는 현대 디자인 문화로 전환되면서, 디자이너는 심미성보다는 기능성에 보다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절대적인 본질에 집중하자는 심미적인 절제, 청교도적인 금욕인 동시에, 규격화된 모듈을 이용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전후시대, 서구 자본주의의 요구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로부터 1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이 명제가 여전히 유효할지는 의심해 볼 만 합니다.

생산과 성장에 중점을 두던 경제 체제는 이제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효율적인 분업과 대량 생산을 위한 도구로서의 모듈레이션은 자원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한 재활용의 한 방식으로 그 개념이 바뀌고 있습니다. 또한, 유형의 기계 공학에서 무형의 전자 공학으로, 규격화된 컨베이어 시스템에서 3D 프린터와 같은 유연한 생산 시스템으로 변화하고 있는 모습은 – 이전 세대에서 디자인과 산업의 관계를 재고하게 합니다. 작아지다 못해 분자화된 부속들은 형태와 기능을 분리시키고, (전투기 등 역학적인 고려를 제외하면) 산업에서 형태의 한계는 기술의 발달에 따라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이언맨의 나노수트처럼 form이 없는 경우라면? - (C) Marvel, Ironman

기능을 따르는 형태가 단일하게 수렴하지 않는다면, 또는 기능을 따른 형태가 가변적/가역적이라면, 기능과 형태의 관계는 충분히 재고할 가치가 있습니다. 어쩌면, 산업화의 패러다임이 백 년 간 진행되어 옴에 따라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형태는 과정을 따른다. (Form follows Process.)’로 바뀌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이 논거가 옳다면, ‘예쁘다.’는 피드백은 다시 공예시대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100년 동안의 디자인 역사를 통해, ‘예쁘다’는 ‘잘 기능한다’에 그 지위를 빼앗겼습니다. 하지만, 산업과 디자인의 관계는 어느 때보다도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혹자는 ‘디자이너의 종말 (링크)’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오는 4월 1일은 바우하우스가 창립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예쁘다’를 말해도 되는 시기에 살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본주의가 해체되기 전까지 루이스 설리반의 명제를 지키며 나아가야 할까요?

* 주석 1. 디터람스의 디자인 십계명 (링크)
** 본문 중 ‘디자인’, ‘디자이너’는 모두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스케치 등을 다루는 “시각” 디자이너를 지칭합니다.

ps. GAFA에서 제공하는 (사실은 강요하는) 디자인 가이드가, 현대의 Form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건 안내일까요, 강요일까요. 확실한 건, 바우하우스의 가르침보단 얕다는 거겠죠 - (C)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