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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쓰는 만년필 잉크들 리뷰

ARTBRAIN 2021. 11. 15. 22:33

만년필을 쓰다 보면 잉크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게 마련.
필요해서, 혹은 호기심으로 사다 보니 가끔은 너무 많아져서 분양(?) 하기도 하고, 아니면 섞어 써보기도 하고^^

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서 - 주력으로 쓰고 있는 잉크를 몇 개 소개하려 해. 도움이 되길.

정확한 발색을 보여주긴 어렵지만, 그래도 서로 비교할 수 있도록 '한 컷'으로 찍었어. 따라서 화소 수가 적더라도 이해해 주길 바라. (실제 색상보다 훨씬 연하고 탁하게 나왔어)


1. Herbin - Profondeurs

요즘 가장 많이 쓰고 있는 아이야.

묵직한 인디고 색상이고, 미묘하게 검붉은 테가 떠. 진하고 뚜렷해. 허빈은 워낙 딥 펜 잉크가 유명한지라, 만년필용 잉크 역시 좀 회화적인 느낌이야. 흐름도 무난해서 주로 f 닙에 사용하고 있어. 조금만 더 빨리 말라주면 좋은데 약간 아쉬워. 허빈답게 (적갈색) 테가 두껍게 뜨는데 잉크도 진한 편이라 잘 눈에 띄진 않아.

입자가 느껴지는 느낌이랄까, 두께가 느껴진달까 - 오로라 만년필에 쓰면 '연필 질감'이 강화되는 것 같아.  

2. Parker Quink - Blue Black

블루블랙인데 내 눈엔 그냥 블루야. 큉크 블루는 너무 새파랗고, 블루블랙이 딱 좋은 블루인 것 같아. 보통 '큉크'는 흐름 좋은 만년필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잖아. 그래서 나 역시 흐름이 박한 펜이나 ef, uef 닙에 쓰고 있어.

약간 보라색의 테가 뜨는데, 큉크는 워낙 농담의 폭이 크다 보니 어떤 때는 마르고 나면 녹색으로 보이기도 해. 흐름이 좋은 것과 잉크의 뚜렷함은 함께 가기 어려운가 봐. 내게는 - 만년필에 문제가 생길 때 테스트하는 '레퍼런스 잉크'지. 

3. Iroshizuku - Ama iro

개인적으로는 이로시주쿠를 가장 많이 쓰는 것 같아. 이로시주쿠는 적당히 진한데 흐름도 좋아서 색깔에 관계없이 두루 쓰고 있어. Ama-iro는 사실 원래 새파란 색인데 얘는 워낙 블렌딩을 많이 하다 보니 탁해진 거야. 블렌딩을 해서 쓰기엔 이로시주쿠가 가장 안정적인 것 같아.

그래도 지금의 색상이 나쁘지 않아. 의도했던 건 아닌데, 다양한 색상이 섞였음에도 불구하고 꽤 깔끔하게 나오거든.

4. Sailor - 누레바이로

색깔의 중후함이나 발색이나, 진하기 모두 나무랄 게 없는데, 너무 박하게 흘러서 쓸 수 있는 만년필이 몇 개 없어. 진득하기가 타르 수준이랄까. 마르는 속도도 빠르고, 두껍게 굳으면 엄청 번들거려. 일반적인 필기에는 적당하지 않아 보이고, 캘리그래피를 하는 사람들이 쓰면 좋을 것 같아. 색상도 스트레이트해서 점잖고 묵직해. 엄숙한 정장을 입은 느낌이랄까.


5. Iroshizuku - Shin ryoku

깊은 숲이라는 이름의 '신로쿠'.

한동안 녹색 펠리칸에는 이 아이만 넣었어. 펠리칸의 녹색과 가장 잘 어울리는 색깔이라고 생각해. 얇은 글씨는 진하고 m, b닙을 쓸 때는 낮은 채도가 돋보이면서 중후한 느낌을 주지. 때로는 검은색 정도로 진해지기도 하는데, 그 색의 범위가 얇아서 '녹색'의 가치가 약해지지는 않아. 

6. Diplomat - Deep green

매우 뚜렷하고 흐름도 좋은데, 뭔가... 좀 매끄러워. 신로쿠에 비해서는 청록색에 가깝고 아주 미묘하게 붉은색 테가 떠. 디플로마트는 펜 디자인도 그렇지만, 잉크에도 뭔가 현대적인 뉘앙스가 있어.

7. Aurora - Verde

요즘 많이 쓰고 있는 색깔. 신로쿠보다 약간 더 채도가 높고 진해. 신로쿠보다는 흐름이 미묘하게 박하지만 정말 미묘한 차이. 생기가 있는 녹색이라 쓰는 재미가 있어. 

8. Pelikan - Duo Highlight, green

호기심에 산 잉크^^

볼 때마다 신기해. 입자가 두꺼워서 '펠리칸 듀오 외의 펜에 써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책임지지 않습니다'라는 경고문이 있어. 그래서 난 (흐름도 좋고 B닙에 가까운, 또한 저렴한) 펠리칸 스크립트 펜에 넣어 쓰는데, 몇 달 써보니 확실히 경고문에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 관리를 조금만 소홀히 해도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느낌?^^ 흐름은 좋은데 뭔가 기름진 느낌이 있어, 문제 생기면 버릴 각오가 된 펜이 있다면 재미삼아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흡수를 잘하는 종이에서는 발색이 오래가는데, 조금 단단한 종이에서는 금방 형광빛을 잃는 것 같아. 


9. Iroshizuku - Tsukushi

우리나라 말로는 뱀밥이라고 하는 이로시주쿠 츠쿠시. 

실제로는 이미지보다 연한 담갈색인데, 연한 금테가 떠. 그래서 어떻게 보면 흑녹색이 보이기도 해. 이로시주쿠 중에서도 테가 잘 뜨는 편에 속해. 개인적으로는 너무 연한 갈색이라서 활용도가 별로 없더라구. 

10. Ferris wheel - Buttered popcorn

잉크병 모양 때문에 호기심에 샀는데, 생각보단 별로였어. 

쓰고 난 후 시간이 지나면 고유의 맑은 색이 금방 사라지는 게 가장 아쉬운데, 아마도 종이를 타는 것 같아. 그래도 노란색에서 진한 붉은색으로 이어지는 그라데이션이 좋고, 뭔가 견고하게 달라붙는 것 같아. 

그리고 왠지 모르게 흐름이 박해. 겉모습보다 입자가 굵은가 봐.

11. Edelstein - Mandarin

비싸긴 하지만 제값을 하는 에델슈타인. 펠리칸의 4001 시리즈는 별로 권하지 않는데, 펠리칸의 프리미엄 라인인 에델슈타인은 정말 괜찮은 것 같아. 이로시주쿠보단 약간 비싼데 발색도 좋고 지속성도 좋아. 흐름도 좋고. 아주 균일한 색조를 갖고 있어. 흠이 없는 잉크. 

12. Iroshizuku - Fuyu gaki

선명한 감색에 약간의 형광? 기운을 갖고 있는 잉크. 딱 홀바인 수채물감의 느낌이야. 약간의 테가 있는데 잘 보이는 정도는 아니고, 무난히 쓸만해. 앞에서도 이로시주쿠 얘기를 많이 했으니, 브랜드의 특성은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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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inaho는, 너무 여러색을 섞은 상태라서^^)

 

잉크는 만년필만큼 취향의 영역이라서 리뷰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을지도 몰라.

내 취향을 참고로 말하자면 : 이로시주쿠를 의심 없이 사용하는 편이고, F닙을 메인으로 생각하지만 일본제 펜을 주력으로 쓰는 편이라 서양 펜 기준으로는 얇다 싶은 펜을 선호해. 어렸을 때는 탁색을 선호했는데 요즘엔 명료한 발색을 좋아하고, 예전엔 흑색 위주로 썼었는데 지금은 '누레바이로' 말고는 흑색을 쓰지도 않아. 대신 어릴 땐 쓰지도 않던 녹색 계열을 즐겨 쓰고 있어. 혹자는 마르는 속도를 민감하게 생각하던데 난 그런 편은 아니고, 테가 뜨는 건 재밌는 일이지만 흐름에 영향을 준다면 기꺼이 포기하는 편이야. 펜 관리를 잘 못하는 편이라서 흐름이 좋은 쪽을 선호하게 되는 것 같아. 예전엔 딥 펜용 잉크 같은 진득한 아이를 좋아했었는데... 펜 관리가 어지간해야 말이지. 

도움이 되었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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