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폴리오 블로그를 표방했지만, 이젠 뭐 하나 글을 쓰려면 장편 서사가 되어서 쉽게 글을 못 올리고 있어. 몇 개 준비 중이니까 조금 기다려봐. (기다리고 있다면^^)
최근에는 만년필을 안 사고 있었는데, 최근에 카베코(Kaweco : 독일 거니까 카베코가 맞지만, 카웨코라고도 불림) 페르케오를 반값으로 팔기에 충동구매를 했어. 보통은 2만 ~ 2만 5천 원에 파는 건데, 신세계에서 만 천 원에 팔더라고. 생김새도 괜찮아서 함 사 봤지. 게다가 반갑게도 M닙.
만 원 짜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겉모습이야. 원래 페르케오는 저렴이 포지션 답게 색깔 놀이를 많이 했었는데 (오른쪽 사진), 아무래도 전통의 강자인 파일로트의 카쿠노나 플래티넘의 소유성을 견제하는 의도 아니었을까. 배럴 모양은 소유성처럼 다각형의 심플한 형태인데, 캡은 카베코의 전통적인 형태야. 저렴이라서 당연히 플라스틱이긴 한데, 카쿠노나 소유성처럼 무른 재질은 아니고, 키보드 플라스틱과 비슷한 느낌이야. 그래서 정말 얼핏 보면 레진 소재인가 착각할 정도. 견고하고 각이 잘 살아있는 형태이긴 한데, 오래 쓰면 번들거리는 재질로 바뀔 것 같아. 오래 쓴 키보드처럼 말이지.
필감은 전형적인 스틸닙이긴 한데, 부드러운 쪽이야. 저렴이에선 카쿠노를 이길 수 없으니 차치하고... 소유성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운 느낌. 카베코가 그렇게 좋은 닙을 쓰는 회사는 아니지만, 이건 가성비로 볼 때 충분히 좋은 닙이라고 봐. 특히 나는 M닙이라 부들거림이 더 좋은 것 같아.
로디아 종이에 이로시주쿠 미모지를 넣어 써 봤는데, 로디아나 토모에리버 종이보다는 미도리 종이에 더 잘 맞는 것 같아. 약간 종이가 거칠어야 상성이 좋은데, 매끄러운 종이는 둘 다 매끄러워서 좀 먹먹하달까. 그런데 이건 내 뽑기 운도 있고, M닙이라서 그럴 수도 있으니 참고만 하길 바라. 어차피 복(Bock) 닙이니 복스러운 느낌이지 뭐.
첫날에는 잉크가 좀 박하게 흐른다 싶었는데, 둘째 날부터는 잉크가 펑펑이야. 흐름은 좋은 것 같아. 릴리풋 등 카베코 만년필들은 대체적으로 컨버터가 들어가기 힘들정도로 배럴이 작은데 이건 카베코답지 않게 배럴이 길어서 컨버터를 쓰기 좋아. 미니 만년필 위주의 카베코에선 보기 힘든 길이감.
올블랙이라 닙도 검은색인 게 마음에 들고, 파스텔 색깔 버전에서는 중결링처럼 그립 윗부분을 다른 색상으로 만들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실수인 것 같아. 심플하게 디자인을 뽑아놓고 납득 못할 위치의 색상을 다르게 하다니. 카베코의 헤리티지와도 맞지 않고 디자인을 아동용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아. 저가 모델이라서 구매층을 의식한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굳이 기능도 없는 곳을 분할해야 했을까.
보는 것처럼 클립이 없어, 원가 절감을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클립이 있었다면 빼고 썼을 거야. 그만큼 클립이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 그립부는 삼각형으로 되어 있어서 잡기 좋은데, 약간 더 완만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 저연령을 의식해서인지 닙 쪽으로 갈수록 지나치게 직경이 얇아지는 느낌이야. 자꾸 그립 윗부분을 잡게 되는데, 무게 중심은 그립 부분을 잡는 게 맞는 거 같아.
플라스틱이라 가벼워서 캡을 꽂고 써도, 빼도 써도 무난해. 성인 입장에서는 캡을 꽂지 않았을 때 좀 날아다니는 느낌이었지만, 막 못쓸 정도는 아니야. 컨버터를 쓸 때 밸런스가 좋은 편인데, 카트리지를 쓰면 밸런스에 좋지 않을 것 같아. (아예 카트리지를 꽂아 보지도 않았음^^)
카쿠노의 필감을 사랑하지만 그 디자인에는 여전히 정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카베코 페르케오는 괜찮은 대안이 될 것 같아. 준수한 필감과 적당하게 포멀한 디자인. 막 굴리기 좋은 플라스틱 재질에다 괜찮은 밸런스까지. 하지만 이걸 2만 ~ 2만 5천 원 정도에 팔았다면 구매 버튼을 누르는 데 주저했을 것 같아. 만 원 초반대라면 가성비가 탁월한 펜이고, 이 펜은 가성비 때문에 사는 펜이니까.
보통 펜 리뷰를 잘 쓰지 않는 편인데, 카베코는 사는 족족 리뷰를 남기네. 전에 카베코 DIA 2 리뷰를 남긴 후 지금까지 만년필을 열 개는 더 산 것 같은데 그것들은 리뷰를 안 썼어. 그만큼 카베코는 뭔가 리뷰를 남기고 싶은 묘한 매력이 있는 거겠지.
만년필 초심자라면 하나쯤 들여도 좋을 괜찮은 펜이고, 만년필을 많이 써 본 사람이라도 장난감 삼아서 하나쯤 사 볼 가치는 있는 것 같아. 만 원 대에 산다면 말야. (나도 빨간 잉크 소모용으로 산 거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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