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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안이 제프 쿤스를 표절했다고?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 - update '21.1.1

Curious ARTBRAIN 2021. 1. 1. 22:11

최근 뉴스 기사를 통해, 권지안(a.k.a. 솔비)의 미술 작업이 제프 쿤스의 'Play Doh'를 따라 했다는 내용을 읽었어. 기사에는 두 개의 색 덩어리를 비교하는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왼쪽은 권지안의 케이크 작업이고, 오른쪽은 제프 쿤스의 거대한 조형물이야.

출처 : 디스패치 - https://www.dispatch.co.kr/2121107

 

이걸 표절했다고 말하는 것 까지는 좀 오버인 것 같고, 그렇다고 건전한 참조라고 하기에는 좀 더티한 것 같고. 그냥 사소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으며, 그녀에겐 조금 아쉬운 찬스였다고 생각해. 권지안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제프 쿤스의 작품을 보고 영감 받아서 만들었다'고 적었지만, 굳이 배색과 형태를 비슷하게 구성해서 본인의 오리지널리티를 날려버릴 필요가 있었을까 싶어.

난 제프 쿤스의 'Play Doh' 시리즈를 이번 뉴스에서 처음 봤어. 하지만 이 작업을 처음 보고도 전혀 놀랍지가 않았는데, 전형적인 그의 작업 방식이었기 때문이지. (제프가 제프한 거지.)

풍선 모형을 거대한 철로 만들거나, 기념품샵에 있을법한 키치한 스타일을 가져오는 것 - (c) SF MOMA

 

일상적인 물건의 스케일을 키우거나, 소재를 다르게 하거나, 키치한 스타일을 가져오거나 하는 건 미술 작법 중 가장 기초적인 개념이라서, 제프 쿤스의 서명이 없다면 이런 일련의 작업이 신선해 보이진 않아. (그래도 Balloon Dog이 처음 나왔을 땐 갖고 싶었어. 귀여우니까^^) 제프 쿤스는 자신의 단순한 작법을 반복 재생하면서 성공한 작가의 즐거운 나태를 보여주는데, 굳이~~ 그녀가 그걸 따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해가 안 돼. 단순히 시각적인 정보만 베낄 거면 왜 베낀 거지? 

제프 쿤스의 스피릿이 아니라 단순히 표현 방식만 가져 온 그녀에게 '표절'이라고 말하는 건 좀 가혹하지 않나 싶어. 시각적인 정보의 유사성만 갖고 표절을 판단하기엔 현대 미술은 훨씬 더 복합적이고 다면적이니까. 

하지만, 권지안이 만든 케이크를 - 색깔과 형태를 빼고 생각하면(?) - 나름 좋은 예술품이 될 수 있다고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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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는 프로토타입이 존재하는 물건이야. 크기와 형태가 규격화되어 있어서 대개의 사람들이 비슷한 심상을 갖고 있지. 그 형태를 무시하고 마치 반죽 형태로 제시한 것은 제법 신선한 발상이라 생각해. 중간중간 마카롱도 박아 넣고, 색깔도 다이내믹하고. 모양은 좀 이상하지만... 나름 맛있어 보이지 않아? Play doh는 그렇게 뭉개라고 만들어진 물건이지만, 이건 음식이잖아. 조금 길티 플레져를 건드리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음식 갖고 장난치지 말라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cake'를 검색하면 나오는 아이콘들 - (c) iconfinder

 

권지안 작가는, 굳이 play doh의 색상을 가져 올 필요가 없었어. play doh를 써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되게 유치하고 원초적인 색상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거든. 나름 회사의 시그니처 색상이지. 제프 쿤스는 애초에 play doh를 똑같이 베끼고 싶어 했을 테니, 아주 신중하게 (외주를 주어서) 색상을 조율했을 거야. 그런데, 그녀에게는 그런 맥락이 없지. 갑자기 play doh 색상이 케이크에서 불쑥 튀어나올 이유가 없잖아.

우리나라에선 철수했나봐 - (c) Play-Doh, Hasbro

 

차라리 딸기 맛, 초콜릿 맛, 민트 맛 등등 -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전형적인 색깔을 사용하던지. 조금 더 나아가서, 애초에 '맛은 색소가 내는 것이 아니므로' 동일한 색깔인데 부분부분 맛이 다르게 하던지.^^ (그럼 시각적인 자극이 부족했겠지?) 혹은, 새하얀 생크림 덩어리들에다 이런저런 색깔로 악센트를 두었다면, 제프 쿤스의 작업과 다르게 보일 수 있으면서도 독특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끈적한 캐러멜이나 설탕으로 만든 유리판 같은 느낌도 적절히 섞었다면 느끼하고 보기도 좋았을 거야.^^

케이크도 그렇게 뭉개뜨려 보았으니, 다음엔 김밥을 뭉개뜨리던지 파이를 뭉개뜨리던지, 이 컨셉은 확장성도 좋아. 계속 - 뭔가 정형화된 것들을 뭉개는 거지, 단 그 기능은 잃지 않도록. (그런 면에선 음식이 딱이구만.) 이걸 보다 컨셉화해서 생각을 확장했더라면, 제프 쿤스처럼 자기 복제를 하지 않고도 자신만의 미술 리소스로서 두고두고 활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워. 게다가 제프 쿤스가 만물을 크고 단단하게 만드는 구태한 작법을 하는 것에 비해, 케이크는 어쨌든 비료로라도 재활용할 수 있을 테니, 보다 현대미술 같지 않아? (이것도 전형적인 '낯설게 하기' 방식이라 적절하게 윤색하는 게 필요하겠지)

이미 인터넷엔 수많은 '망가진 음식' 리소스가 있어. 보기에 가장 안타까운 걸 골라보자구. - (c) google

 

권지안 작가는 애초에, 철학적이거나 논리적인 해석으로 소비되는 미술계와는 좀 거리가 있어. 미술계에서 권지안 작가를 소비하는 방식은 오히려 시대과 사회에 대한 현상학에 가깝지. 연예인이라는 전-직업이 이 땅에서 함의하는 상징도 뚜렷하고, 그녀가 만들어 내는 것이 감정과 자아의 표현이지, 논리와 사상의 산물은 아니잖아. (이건 추측이지만 확신에 가까워.)

하지만,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정보들이 그녀에게 몰아쳤을 거야. 미술계의 사람들도 만나고, 전시도 열심히 다니고, 나름 훈수 두는 비평가도 있을 테고. 전시를 하면서 새로운 경험도 쌓고. 비평하는 여러 책들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겠지. 그러면서 그녀는 좀 모호해진 것 같아. 아직 시선과 개념은 날 것에 가까운데, 보는 것들은 죄다 형이상학적인 거니까. 괴리가 생긴 게 아닐까 싶어.

그렇다고, 그녀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못 갈 이유는 없지. 그녀가 어느 날 트레이시 에민이나 아감벤, 하버마스 등을 언급한다고 해서, 나 같은 관람객이 '너의 미술은 그 쪽이 아니야'라고 말할 권리같은 건 없으니까. 그녀의 미술 행보를 응원하지도 않고, 내가 생각하는 현대미술과 그녀의 작업은 거리가 상당히 있지만 - 발자크가 그랬던가 - 그녀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걸 하는 권리에는 절대적으로 지지를 보내. 하지만 이 사달이 난 것은 무지라기 보단, 욕심 때문이잖아. ^^

공부 좀 더 했으면 좋겠고, 스스로 잘못이라고 느껴지는 건 안했으면 좋겠어. 권지안은 '미술을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유형의 작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저작권이나 기본적인 창의의 범위까지는 공부를 했으면 좋겠고. 좋은 소재를 가지고 있었는데, 허튼 색깔 욕심 때문에 문제를 키운 거잖아. 욕심이 머무는 곳에 창의가 남아있긴 힘들어. 

나름 미술계에 몸담았었던 (그리고 여전히 마음은 그 쪽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일을 뉴스에서 접하면,
좀 많이 쪽팔린다구. - - ;

 

[+] update

솔비의 인스타그램 전문 12.31

180(W)x180(L)x240(H)mm
mixed media on marble cake
2020

2020년도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이 가득한 한해였다. 화려해보이는 외면과 다르게 상처받고 미완성의 불안정한 케이크 모습은 2020년도를 겪은 현대인들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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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진열되어 있는 획일화된 케이크를 보니 팝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팝아트가 가진 경쾌하고 화려한 형태의 이면에 숨겨진 외로움과 고독이 감사와 축하의 순기능을 잃어버린 환영받지 못한 나의 케이크에 고스란히 느껴진다.

제프쿤스... 표절하고 싶었다면 내가 그를 선택했을까?

코로나로 인해 기능을 잃어버린 세상처럼 2020년 마지막날, 나도 케이크도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그렇게 또 한해가 마무리된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

"마르셀 뒤샹은 변기를 보니 샘이 떠올랐다.
제프쿤스는 찰흙을 보니 조각품이 떠올랐다.
난 그의 조각품을 보니 케이크가 떠올랐다.
앤디워홀의 영상을 보니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 다시 케이크를 보니 2020년 많은 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2020.12.31
-권지안-


(위 내용을 영역해 놓은 게 하단에 같이 붙어 있었으나 생략)

 

살면서 경험하는, 참 몇 안되는 안타까운 장면이 이런 거야. 최악의 사족.
무지와 공격성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참 원초적인 일이지만, 동시에 너무너무 안쓰럽지. 

어쩌겠어, 잊던지. 부끄러워하면서 이겨내던지.

 

바바라 누님이 말씀하셨잖아. '충분하면 만족하라'고. - (c) 아모레 퍼시픽, 바바라 크루거, Plenty should be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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