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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 of UX

ZEN of UX. 16 - 리비히 최소량의 법칙

ARTBRAIN 2021. 8. 25. 14:38

일을 진행시킴에 있어서, 어려움에 부딪히면 항상 떠오르는 두 개의 이미지가 있어.

하나는, 프로세스와 계층 구조를 생각할 때 항상 떠오르는 '꼬리잡기 게임 (링크)',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성원의 업무 역량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리비히 최소량의 법칙'.

출처미상

간단하게 얘기하면, "생장에 필요한 여러 필수요소 중 가장 적은 양으로 존재하는 것이 성장을 제한한다." 또는 "가장 나쁜 환경 조건이 성장률을 통제한다"는 거지. — 좀 염세적인(?) 느낌의 이론이야. 

그래서 이걸 인력에 비유하는 게 좀 꺼려지긴 하지만, 실제로 서비스/프로젝트가 문제를 일으킬 때는 이만큼의 찰떡 비유가 없다고 생각해. 문제를 정량화한다는 측면에서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문제는 역량의 총량이 아니라 역량의 불균형에서 발생한다."는 명제는 경력이 쌓일수록 더 와닿는 것 같아. 

©MBC, 무한도전 - 김수현이 실력발휘를 못했던 이유


무한도전 김수현 볼링 편(언제적이야 이게ㅠㅠ)을 보면서, 협업이든 경쟁이든 간에 내게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상태에서도 상대의 역량이 나의 능력에 영향을 준다는 걸 많이 느꼈어. 프로급의 실력을 갖고 있는 김수현도 무한도전 멤버들과 함께 어처구니없는 게임을 하니까 평소의 절반도 안 되는 실력을 보여주잖아. 실생활에서도 느끼지 않아? 잘하는 친구들과 할 때는 덩달아 높은 점수를 내지만, 자신보다 못하는 친구들과 하는 게임은 함께 못하게 되지. 심지어 팀웍이 필요 없는 볼링이나 당구 같은 게임에서도.

이걸 긍정적으로 뒤집어 해석하자면,
"다수의 hi-scorer와 소수의 low-scorer가 한 팀을 이루는 경우, low-scorer는 평소보다는 더 나은 성적을 낼 수 있다." 이고, HR에서 강조하는 '협업의 효용'이긴 한데... 사실은, 애초에 low-scorer의 실력이 '제약 없이 발현된 것' 뿐이고, 같은 팀의 hi-scorer에게 일어나는 손실은 주목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팀웍의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 역량의 총량이 평균 레벨로 모이면서 간혹 평균보다 높은 퍼포먼스를 낼 수는 있지만, 그건 성원 간의 역량 차이가 크지 않은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일어나는 일인데다 흔하지도 않아.

이런 경우 대개는 "이번 프로젝트는 모두 훌륭한 팀웍을 보여주었지만, 아쉽게도 좋은 결과를 내지는 못했어.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특히 (low-scorer)가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어.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돼." 정도로 정리되곤 하잖아. 실제로는 내적인 잠식이 일어나고 매너리즘이 출현하는 순간인데도 말이지.

그렇다면, 리비히의 법칙이 업무에도 들어맞는 건 어떤 원인 때문일까? 또한, 서로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부서 간에서도 어떻게 '최저 역량의 통제'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 리비히의 법칙이 불가피한 현상이라면, 우리는 이 손실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을까?


나는 꽤 많은 혐의를 '의제 설정'에 두고 있어. 

나 역시도 의제를 통제함으로써 업무를 단순하게 만드는 비술을 종종 썼으니까. 의제의 질에 따라 결과의 질이 달라지는 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걸 관리/통제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 또한,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야.

단순한 예로 — 내가 주니어들과 일할 때는 '폰트, 픽셀, 컬러' 레벨의 이야기를 주로 하게 돼. 주니어들에게는 거기부터 어려울 테니까. 그러다 보면 은연중에 내 관심도 그쪽으로 더 많이 쏠리게 되어서 더 큰 방향을 보기 어려워져. 의제는 방향보다 현상 레벨로 '내려오게' 되고, 진취적이고 거시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일은, 적절히 시니어와 섞여 일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지게 돼. (그래도 이건 한 부서 내의 이슈라서 객관적인 역량 측정이 가능하지만, 부서 간의 의제설정은 더욱 미묘하고 복잡해서 쉽게 알아차릴 수 없어. 개발자가 깔끔하게 프로그래밍하는 것과 UX 디자이너가 깔끔하게 구조를 짜는 것을 한 그래프에 정리할 순 없는 거니까.)

서비스/프로덕트가 "함께 무엇을 고민하느냐"에 따라 각 성원의 역량이 변하게 되고, 대개는 가장 낮은 역량의 관점을 채택하거나 그 관점을 수용해서 조정되곤 해. 왜냐면 그쪽이 가장 보수적인 선택, 즉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리스크가 적은 방향일 확률이 높으니까. 즉, 가장 적은 솔루션을 가진 사람이 문제를 장악하게 되는 상황. 높은 수준의 전략이 하위 레벨의 인력에게까지 도달하려면, 온전히 전략을 이해시켜야 하는데 - 물론 그게 제일 이상적이겠지만 -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거든.

단순히 소통의 문제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의 업무와 각각의 이해관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흔히 얘기하듯이 "커뮤니케이션! 소통을 잘하자! 접점을 만들자! 프로세스를 개선하자!" 같은 걸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결국 위의 통나무 통 그림처럼, 역량이 약한 쪽으로 리소스와 퀄리티가 새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지.

때론, 이 미묘한 누수를 보면서도, 적극적으로 제어하지 못해서 답답해. '어디가 새는 건지' 보이면 속이라도 시원하겠는데, 이런 현상은 돈세탁하듯이 여러 루트를 건너며 발생하는 거라 진원지를 찾기도 힘들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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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혐의는, 조직공학(?)에 있다고 봐.

어떤 일이든 고도화되면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도록 다양한 부서를 두고 역할에 맞게 단위를 구성하는데, 앞에 말한 것처럼 총량의 문제가 아니라 격차의 문제이기 때문에, 똑같은 인력이라도 부서 단위를 어떻게 운영하고 어떻게 연결을 만드느냐에 따라 엄청난 퍼포먼스의 차이가 생긴다고 생각해.

이해를 돕기 위해 '콘웨이의 법칙'을 인용하자면 — 소프트웨어 구조는 해당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닮게 된다는 이론이 있어. Any organization that designs a system (define broadly) will produce a design whose structure is a copy of the organization's communication structure. 단순히 말하자면, 조직의 구성 자체가 곧 의사결정의 구조가 된다는 뜻이지.

어떤 한 부서로부터 누수가 생기는 것의 4할 이상은 조직 구성의 에러 때문이라고 생각해. 간결하고 효율적인 부서 구성과 커뮤니케이션의 프로세스만으로 많은 문제가 해결됨에도 불구하고, 많은 회사에서 조직 구성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 

@네이버


가장 간단한 예시는 네이버 메인화면 하단의 탭일 거야.

여러 주제를 돌아가며 컨텐츠를 노출하는 곳인데, 탭 구조이기 때문에 선택되지 않은 다른 탭이 소외받는 구조야. 뭐 짐작하겠지만, 각각의 탭을 관리하는 곳은 부서별로 나뉘어 있겠지? 부서를 컨텐츠 별로 나누다 보니, 이런 화면에서는 필연적으로 서로 '경쟁하는'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잖아. 초기에는 각 컨텐츠에 맞춰 기자와 에디터를 영입하면서 각자의 살림을 꾸리는 게 유용했겠지만, 이렇게 한 화면에서 부딪히는 상황에서는 이런 컨텐츠별 구성이 방해로 작용하게 돼.

탭 간의 클릭 수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UI 개선이 필요한데, 부서별 이해관계가 있어서 UI를 쉽게 바꾸지도 못하지. 조직공학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UX가 받아오고, 또 그것이 특정 탭을 고사시키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이런 구조 때문에 발생되는 클릭 수 불균형은 '가장 적은 클릭을 받는 컨텐츠' 부서를 위축시키지. 서비스 전체의 평균을 낮추는 건 물론이고. (특정 탭이 덜 눌린다고 해서 다른 탭이 더 눌리는 것도 아니니까 총량 감소는 결국 조직 구성 에러로부터 발생하는 셈이지.)

• 위 예시는 콘웨이의 법칙과 미묘하게 다름. 콘웨이의 법칙은 '하나의 컴파일러를 세 팀이 함께 만들면, 3단계로 빌드하는 컴파일러가 나온다'는 개념.
• 네이버 메인화면 개편 컨설팅(link)을 할 때 유일하게 찜찜하게 끝났던 부분이 저곳이야. UX 컨설팅이라 조직구조에 대한 부분은 어쩔 수 없었으니까.
• 위 네이버 예시는 오직 '메인화면'에만 해당되는 얘기고, 실제로는 컨텐츠 별로 팀을 분리하는 게 총이익이 더 크겠지. 


마지막 혐의는 좀 신비스러운 건데. 역량의 전염이라고 말하면 맞을까?

그냥 같은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 서로 영향을 받는 거지. 불행히도 하향 평준화되기 쉬운 데다, 아무리 회사의 핵심가치, 이념, 인재상 등을 쏟아부어도 통제되는 종류가 아니야. 문화가 아니라 욕망의 문제, 정서의 문제니까. 문화는 '가치정의, 내부 브랜딩'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균질화할 수 있지만, 역량의 관리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

LH라고 사명이나 핵심가치를 정의하지 않았을까 - ©연합뉴스

LH의 사례는 개개인의 이익이 개입된 거라 역량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지만, 이익 말고도 전체의 역량 레벨을 낮추는 전염의 종류는 다종 다양해. 자존감이나 권력욕일 수도 있고, 반대로 회피 의지일 수도 있어. 단순히 "그냥 싫음!" 일 수도 있고. ^^ 감정적이거나 정신적인 부분이라서 분석하긴 쉬울지도 모르지만... 개개인의 변태적인 개성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어. 게다가 이건 최악의 경우 '일을 안되게 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도 있고, 히어로를 빌런으로 여기게 만들거나, 심지어는 빌런으로 흑화 시키기도 하지. 잠재적인 위험성은 '의제설정'의 문제보다 더 크다고 봐.


해결책은? 모르지. — 단순한 해결책은 분리, 제거, 신속한 지식의 동기화, 유동적인 유닛의 조정 정도? 

역량이 낮은 이들끼리 묶어두면 또 나름 훌륭한 성과를 내기도 하더라구. 그들만의 담론을 고도화하면서 나름의 성취를 이루는 걸 종종 목격하기도 했어. (그들만의 신이 있는 느낌이랄까^^) 통나무 통의 너무 작은 막대기라면 뽑아내는 게 제일 쉽겠지만, 사람은 잠재력을 항상 가지고 있기에 잘못된 판단으로 인재를 버리는 참사를 겪을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해야 해. 혹시 몰라 첨언하자면, '역량이 낮은 부류를 비하할 목적'으로 이 이야기를 말하는 건 아니야. 이 얘기는 다분히 공리적인 관점에서 쓴다는 걸 믿어줘.

지식의 동기화와 유동적인 조직 정비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프로젝트일 정도로 매우 어려운 일이지. 특히 업무의 성격이 고도화될 수록 한계가 생기기도 하고. (이 부분은 거의 모르는 분야니까 패스~)

의외의 곳에서 찾아오는 평화 - ©코리아데일리

 


이래저래 이야기하더라도, 가장 낮은 쪽에서 새는 걸 보는 건 썩 유쾌하진 않아. 내가 가장 낮은 막대기인 경우도 종종 있었겠지만, 그런 경험 역시 유쾌한 게 아닐 거야. 오랜 연륜이 해결해 줄까 싶었는데, 아니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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