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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칸토 - 가족에 빗댄 삶의 서사

ARTBRAIN 2021. 12. 7. 21:28

스포가 많아요.

 

 

오랜만에 영화를 봤어. 펑펑 울고 왔네. 최근 어머니의 건강 문제 때문에 마음이 좀 약해져 있었나 봐. 모든 장면에 몰입해서 본 것 같아.

모처럼의 휴식이라, 평소처럼 분석적으로 영화를 보려 하지 않고 아이들과 편하게 즐길 생각으로 갔는데…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것 같아. '마드리갈'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엇! 이거 뭐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감정과는 관계없이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어. 이거, 여느 디즈니 영화랑은 다르겠구나. 뭔가 복잡한 알레고리가 있겠구나 싶었거든. 눈물이 그렁그렁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여러 '참조'들을 소환하는… 참 복잡한 영화관람이었어.

우선, 가족의 성인 "마드리갈Madrigal" — 이거 음악 용어잖아. 대충 중세의 돌림노래 형식의 성악곡이라고 알고 있는데, 캐롤 '북치는 소년' 같은 걸 상상하면 될 거야.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이 좀 특이한 분이셔서 이런 것도 가르쳤지, 하하. 물론, '마드리갈'이라는 발음이 노랫말에 어울려서 선택했을 수도 있겠지만, 우연이라기엔 드라마의 구조나 인물 구성이 뭔가 인위적이잖아. 세 명의 아이로부터 태어난 세 명씩의 손자... 굳이 수를 맞춘 이유가 있지 않겠어? 

© Disney

세 쌍둥이인 알마의 자식들은 각각 치유, 불안, 회피를 상징하고, 페파의 아이들은 감각과 관련한 능력을, 훌리에타의 아이들은 힘이나 아름다움, 의지? 같은 절대적인 가치를 능력으로 삼고 있어. 계속 셋씩 짝지으려는 게 눈에 보여. 심지어 자식이 없는 브루노는 세 마리 쥐를 데리고 다니고, 루이자 씬에서는 스토리에 잘 붙지도 않는 '머리 셋 달린 켈베로스'도 보여주지.

예쁘게 구성한 이런 가족 구성원들은 마치 '마드리갈 음악'처럼 서로 켜켜이 쌓이며 전개돼. 각 인물의 에피소드가 맞물려서 상승하지만 궤를 벗어나지 않고 순환하지. 마지막 클라이맥스도 할머니(머리)와 미라벨(꼬리)의 화해잖아. 뭔가 형식으로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야기로서는 마이클 리의 '비밀과 거짓말'이 생각나기도 하고, 하지만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건 역시나 '괴델, 에셔, 바흐'. 꼬리를 문 뱀. 영원한 황금 노끈. 명징하게 직조해낸 성장 우화? 

영화를 보며 연상되었던 책과 영화

먼저, 고생길에 막 들어선 손자 라인을 보면,

자신의 잠재력이 뭔지 몰라서 두려움을 느끼는 안토니오. 남들이 갖고 있는 것을 나만 갖지 못했을 때 생기는 부조리함,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미라벨.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강해야 한다는 강박의 아니마와 아니무스, 루이사이사벨라. 다른 이들을 미러링만 할 줄 아는 카밀로. 많은 이야기를 듣지만 섣불리 나서지 않는 돌로레스.

고난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자식 라인은,

사랑으로 주변 사람들을 치유하지만, 육체에 한정된 능력을 가진 훌리에타. 문제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지만 끊임없이 절제해야 하는 페파. 문제에 대한 개선 의지는 있으나 결국 도망쳐 버린 브루노.

이쯤 되면 알마의 포지션은 명확하지 :

고난을 일단 봉합했지만, 언제 터질지 몰라 불안하고, 문제를 터뜨리지 않도록 주의하는 나머지 지나치게 방어적, 보수적 꼰대 이 되어버린 할머니. (* 알마를 성부, 마법의 집 카시타가 성자, 촛불을 성령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좀 많이 오버다 싶어서 취소. 카시타의 부활. 얼래? 가족이 하필 열두 명? ^^ )

그러니까, 각 세대는 시련을 겪는 과정에 대한 공시적인 고찰이고, 형제자매는 시련에 대한 태도의 유형을 통시적으로 나타내는 거야. 그래서, 난 이 내용이 —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단,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가족 간의 화해가 아니라 스스로를 용서하고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이야기. 

 © Disney


그런데... 나비가 지나치게 많이 나와. 눈치채지 않는 게 어려울 정도. 그리고 개인적으론... 나비가 좀 불편했어. 

© Disney, Marvel

앞에서 '천로역정'이 연상된다고도 말했지만, 이 영화를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알마의 꿈'이라고 읽을 수 있을까? 오직 그녀만 현실적인 사건(내전)을 겪었으니까. 세 쌍둥이는 남편이 죽음에 대응하는 세 개의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겠지. 엇! 이러면 '판의 미로'인데? 아님 '완다비전'?

요즘은 서양도 '호접몽'에 대한 이해가 있으니까 나비를 '꿈'의 상징으로 사용했대도 이상할 게 없지. 서양의 상징체계에서 나비는 '탈피, 변화, 소망' 등으로 쓰이니까, 굳이 꿈이 아니래도 얘기는 되지만... 낯설게 꼬아 생각하는 게 더 즐겁잖아. ^^ 카시타 안에 죽 늘어선 문들이나,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무한할 것 같은 방이 펼쳐지는 것, 미라벨의 문이 사라지는 것 등 — 너무 프로이트적이거든. 어느 정도 '나이가 찬 다음'에 발현되는 개개인의 능력이란 것도... (왜 나이가 중요한 걸까. 하.하. ^^)

그런데, 이 모든 내용을 알마의 꿈이라고 생각하면, 결말이 너무 슬퍼져. 강변에서 남편을 잃고 미쳐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 그리고 성냥팔이 소녀의 죽음 같은 결말까지. 에이... 아니겠지, 설마 디즈니가.

그냥 무난하게 나비를 해석하자면, 나비는 알마의 남편 페드로의 현현이라고 보는 게 적당할 것 같아. 아내와 세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희생한 남편의 상징. 죽어서도 가족을 떠나지 못하고 그들의 곁을 지키는. (흑흑) 그래서 촛불에도 그려져 있고, 카시타의 곳곳에, 인물들의 장식에 반복되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카시타 혹은 마을이 고치(번데기)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집이 무너지고 산이 깨지는 걸 탈피라고 하면, 가족은 새로운 존재(나비)로 변화해야 맞는 건데... 탈피를 했다기엔 집은 멀쩡히 재건되고, 모아나처럼 어디론가 이주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그래서, 이 '나비'를 쓴 게 난 좀 불편해. 너무 애매하고 둔한 펀치. 계속 강조하고는 있는데, 정체가 뭐냔 말이지.

때로는 '이렇게 읽어도 되고 저렇게 읽어도 되는' 열린 상징이 담론을 풍부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이건 열린 상징이기에는 내적인 에너지도 작고, 스토리와의 연관성도 없어서 추론의 단서도 별로 없어. 즉, 나비를 보다 개연성 있게 가져가던지, 아예 빼는 게 나았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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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단점이라면 : 디즈니 답지 않게 상징이나 은유를 적극 사용하는 구조화된 영화다 보니, 중심 플롯만 챙기고 서브 플롯을 엉성하게 방치하는 것 (약혼자는 왜 나온 거야?), 서로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고 모두 자신의 걱정만 챙기는 것 등 — 각 캐릭터가 서로 얽히지 못하고 체스판 위의 말처럼 느껴지는 — 뭔가 살갑지 않은 느낌이 있어. 

많은 인물을 제시했으면 그 사이의 유기적인 결합을 보여줘야 하는데, 부모자식끼리, 형제자매끼리 챙겨주는 느낌은 없고, 마치 퀘스트를 행하기 위해 NPC를 만나듯이 형제자매를 대하고 있어.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결합이라면 안토니오와 미라벨의 연대, 그리고 그 연대가 브루노의 의지를 깨우는 데 중요한 모멘텀이 되는 부분인데, 이게 가족영화였다면 이런 가족 간의 시너지가 강조됐어야지, 주인공만 고군분투하는 영화를 가족영화라고 하기에는 좀...

하지만, 맨 앞에서도 말했듯이, 난 정말 영화 내내 눈물이 펑펑 — 너무 공감하면서 페이소스를 느꼈어. 
왜냐면, 나도 저렇게 살아왔으니까, 살고 있으니까.

어렸을 때의 불안과, 삶의 부조리와, 콤플렉스와, 어른 또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피하고 싶은 기억들과, 의도한 혹은 의도하지 않은 과오, 상처, 후회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과, 변명들과 연민까지 — 모든 사람이 겪을 삶의 역경들을 정말 잘 캐치한 것 같아. 이런 재능이라면 굳이 왜 구조화를 했나 싶었어. 감정선을 잡는 능력이 구조화하는 능력보다 훨씬 훌륭한 것 같은데 말이지. ^^

사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등장인물이 '내 걱정은 이거야~'라고 고백하는 영화도 흔치 않잖아. 너무 뻔뻔한데도 어색하지 않은 건, 훌륭한 음악과 짧고 감각적인 전개 때문일 거야. '맞아!' 혹은 '내 얘기야!'라고 공감하는 순간, 순식간에 확 휘어 잡히는 몰입감이 있어. 엄청난 내공의 캐릭터 표현과 현란한 그래픽도 보는 사람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데 한몫하는 것 같고. 

겨울왕국에 비하면 그래픽은 정말 일취월장. (뒤에 NPC들 보여?)

이제 디즈니는 픽사를 바짝 추격했다고 봐.  

특히 PC 한 걸 제대로 녹이지 못해서 "PC 한 건 재미없다"는 소리를 들었던 전작들에 비해 엔칸토는 그런 어색함을 거의 못 느꼈어. 오히려 '이사벨라가 탈코했다'는 트윗이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중심을 잘 잡은 것 같아. 원래대로라면 남자 역할이었을 루이사도 어색하지 않았... 다기엔 노래 하나만 부르고 존재감이 없어졌지.  

두루두루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확실한 장점이 결점들을 커버하는 영화라고 생각해. 
사실, 지적인 즐거움과 감정의 충만함을 이렇게 캐주얼한 방식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건 — 정말 대단한 거잖아?

ps.

Sebastián Yatra. 이야 ~ 이 새퀴 왤케 노래를 잘함? 고막 녹는 줄 알았잖아. Caetano Veloso가 회춘해서 돌아온 줄. 힙한 음악을 듣고 종반까지 왔는데 갑자기 어쿠스틱한, 또한 향수를 부르는 보이스가 나와주니 게임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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