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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Dune, 2021) : 영화에서 힌트만 준 것들. 스포 포함

Curious ARTBRAIN 2021. 11. 8. 21:23

네 달쯤 전에, Dune을 영화화한다는 얘기를 듣고 서둘러 소설책을 구해 읽었어.
감독이나 배우들을 보고 짐작컨대 — 꽤 괜찮은 영화가 될 것 같았거든.  

(좌) 신간과 구간 (우) 4권까지 삼


소설을 읽은 후에 본 영화가 실망스러울 땐 영화를 안 본 셈 치면 되는데, 소설을 읽지 않고 본 영화가 만족스러우면 꽤 난감해져. 아무래도 영화화하면서 압축된 설정과 디테일들을 소설 속에서 재구성하는 게 어렵기도 하고, 영화의 시각적 설정들에 얽매이게 되어서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워지니까. 그래서 개인적으론 '왕좌의 게임'과 '반지의 제왕'을 영상으로 먼저 접한 게 참 후회스러웠어.

© Warner Bros.


듄의 경우, 영화보다 소설을 먼저 본 건 옳은 선택이었어. 덕분에 드뇌 빌뇌브 감독의 역량을 분명히 알게 된 것 같아. 그의 영화를 많이 보진 못했는데, 이야기를 통합하는 능력이나, 작은 디테일에 이야기를 녹이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아. 상당히 많은 내용을 삭제했지만, 책을 읽은 사람은 느낄 수 있는 작은 디테일들이 있어. 정말 대사 한 줄 컷 한 장도 허투루 쓴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책을 읽은 후에 영화를 보길 강력 추천하고, 만일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래 내용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름하야 "영화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 - 스포일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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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황소가 계속 나올까?

© Warner Bros.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폴과 제시카가 아침을 먹는 씬이 있는데, 중간에 실내 풍경을 보여주는 척하면서 이 두 컷이 나와. 

왼쪽의 초상화는 레토 공작의 아버지, 즉 폴의 할아버지인데 복장부터가 투우사 차림이야. 이후 레토 공작(아버지)과 폴이 묘지에서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한 번 더 할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Paul : and grandfather fought bulls for sport! 
Leto : Yes, and look where that got him. 

즉, 폴의 할아버지 '파울루스 아트레이데스'는 투우를 좋아해서 투우를 즐겨했는데, 그 때문에 (소에 받혀) 죽었다. - 정도를 유추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만한 단서가 없어. 소설에서는 그의 죽음에 하코넨의 계략이 있었다고 넌지시 암시하는 게 있기는 한데, 그것도 정사(正史)는 아니고. 혹자는 Harkonnen의 어원인 Härkä가 핀란드어로 '소'를 의미한다고 해서라는데, 그게 맞다고 해도 너무 먼 상징이잖아. ^^ (하코넨의 상징은 푸른 그리핀)

하지만 이후로도 황소는 계속 나와. ^^ 폴이 시험받기 직전. 유에 첫 등장 씬에도 나오고, 

© Warner Bros.

칼라단에서 포장이사할 때도 제일 먼저 챙기고,

© Warner Bros.

아라키스에 도착해서 짐 풀 때도 제일 처음 풀고, 

© Warner Bros.

첫 샌드웜 관광(?)을 마친 후에 폴이 방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도 투우 조각상.

© Warner Bros.

마취된 레토 공작을 내려보기도 하고. ^^

© Warner Bros.

레토의 죽음 직후에는 심지어 클로즈업. ㅠㅠ

© Warner Bros.

감독이 이렇게 정성스럽게 꽂아 둔 상징이지만, 사실... 이걸 꼭 넣어야 했나 싶어. Part 2에서 이 상징을 더 확장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오만함, 섣부름은 화를 부른다' 정도의 상징이라면 너무 시시한 거고, 크리스나이프의 이빨과 황소의 뿔을 연결해서 시각적 상징체계를 연결하려 했다면 너무 심오한 거고. 소설에서도 이 황소(머리)에 대한 초반 묘사가 꽤 길게 나오는데, 그걸 받쳐주는 서사는 또 딱히 없거든? 

그냥 소설에 대한 존중, 오만에 대한 경계의 상징, 혹은 아트레이더스 조상들의 굽어 봄 정도로 생각하는 게 적절하지 않나 싶어. 소설에서는 저 황소 머리에 파울루스 아트레이데스의 피가 묻어있고, 그게 사라지지 않게 방부처리했다는 설정도 있는데, 극장에서 그런 설명까지 들었다면 정말 지루했을 테고^^

 

2. 뜬금없는 반전 : 닥터 유에

© Warner Bros.

영화만 본 사람들은 유에의 반전이 뜬금없다고 생각했을 거야. 개인적으로는 이 반전을 영화에서 어떻게 살릴지 기대했었는데, 너무 싱겁게 끝났어.

소설의 설정으로는 이마 가운데의 다이아몬드 마크가 수크 의사(Suk Doctor)의 상징인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거나, 해를 입힐 생각도 못하게 훈련받은 의사'임을 나타내는 마크거든. 그래서 웬만한 대가문이 아니면 수크의사를 들이지도 못한다는 설정이 있는데, 영화상에서는 누가 배신자일지 추리하는 내용도 빠지고, 유에의 배신 동기도 빠지고... 소설 중반까지의 스릴러적인 요소가 모두 사라지니까 전개가 좀 생뚱맞아진 것 같아. (논외로, 와호장룡 이후에 십수 년 만에 장첸의 모습을 보니 반가웠음^^)

게다가, 영화에선 잘 묘사되지 않는데 - 사실 유에는 아내가 죽은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를 되찾기 위해" 배신한 게 아니라, 죽은 아내 몫의 복수를 하는 게 목적이었어. 당연히 자기가 죽을 줄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런데 그런 디테일이 사라지니까 배신의 명분도, 복수의 공허함도 잘 살지 못한 것 같아. 

 

3. 레토와 제시카 사이의 묘한 긴장관계

© Warner Bros.

소설에서는 폴을 암살하려는 시도 직후 아트레이더스 진영 전체가 큰 혼란에 휩싸이는데, 내부 스파이가 누군지 밝혀내려는 과정에서 레이디 제시카가 가장 큰 의심을 받아. 신뢰와 사랑이 깊은 레토는 그녀를 의심하지는 않지만, 진짜 스파이를 찾아내기 위해 제시카를 의심하는 척 하지. 

이 장면은 원래 "제시카가 스파이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관객에게 심어 줄 목적으로 제작된 것 같은데, 편집을 거치다 보니 단순히 '레토의 불안한 마음'을 나타내려는 씬이 되어버린 것 같아. 

© Warner Bros.

중간에 나오는 이런 제시카의 표정이... 위와 같은 배경지식이 없으면 설명되지 않잖아. 레베카 퍼거슨의 이 표정은 '나도 뭔가를 숨기고 있으니 날 의심해주시오!'라는 표정 같거든. ^^ (번외로, 거니 할렉과 던컨 아이다호는 진짜로 레이디 제시카를 의심해. 아이다호의 경우는 밤늦게 술먹고 제시카 앞에서 꼬장 피우기도 하고.)

 

4. Cousin? 사촌?

© Warner Bros.

아트레이데스를 장악하고서 블라디미르 하코넨은 아트레이데스의 음식을 맛보며 이런 대사를 치지.

You have wonderful kitchen, cousin. 

커즌? 사촌? — 이상하다 싶어서 영어사전을 찾아보니 '먼 친척이나 일가'의 뜻으로도 쓰일 수 있다나 봐. 그럼 그렇지, 가문이 다른데 사촌일 리가. 이건 영화 part 2에 나올지 모르겠지만, 설정상 레이디 제시카는 하코넨 가문 사람이야. 어떤 위키에서는 블라디미르 하코넨의 '딸'로 적혀 있던데, 내가 읽은 버전의 책에서는 그렇게 나오지는 않았고, 단순히 '하코넨 가문 출신' 정도로 묘사되었던 것 같아. 베네 제서리트의 교배 계획에 따라 결혼한 거지.

 

5. 쥐?

© Warner Bros.

나중에 폴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내세우는 게 바로 이 사막쥐야. 나중엔 폴 아트레이데스가 아니라 폴 무앗딥 (Muad'Dib)으로 살게 돼. 2편에서는 더 자세한 내용이 나올래나? 폴이 이 쥐에게 동질감 같은 걸 느껴야 맞을 것 같은데, 영화 속에서는 단순히 귀여워하는 느낌이라 좀 아쉬웠어. 

 

6. 당신과 결혼했어야 했어

사전지식 없이 영화를 본 사람에게는 정말 이상할 것 같은 장면이야. 

I should have married you.

둘은 결혼한 사이가 아니라, 이를테면 사실혼(?) 상태인 거야. 정략적으로 다른 가문에게 여지를 두기 위해 정식 결혼은 하지 않았거든. 혹자는 '첩'이라고 표현하던데, 그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어. 사실 둘의 '결혼' 여부가 소설에서도 그다지 중요한 설정은 아니라서... 영화에서는 걍 없앴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어. (2편에선 이 설정이 필요할까...? 레토도 죽었는데?) 

 

ex. 벤자민 클레멘타인

이 사람 - 어디서 봤다 싶었는데. Benjamin Clementine이라고 하는 유명 가수야. 배우까지 하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어. (노래 링크)


이것 외에도 소설의 설정이 언뜻언뜻 보이는 게 있는데, 영화의 퀄리티를 해치는 부분이 꽤 있지만 - 감독이 소설에게 바치는 애정과 존경이 느껴져서 그다지 흠결로 느껴지지는 않았어. 하지만 여전히 - 영화만 보려는 사람에게 불친절한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오랫만에 왓챠에다 별점 4.5를 줄 만큼 나는 이 영화를 좋게 봤고,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해.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꼭 극장에서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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