ときめ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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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가 디자이너 뽑는 이야기 (2)

ARTBRAIN 2022. 5. 26. 01:01

리멤버 인플루언서 2기에 선정되어서, 앞으로 몇 개의 글을 리멤버 앱에 올리게 되었어.
여기에도 함께 공유하려 해. ( 리멤버 글 경로는 여기 : 링크 )

리멤버에서는 경어로 쓰지만, 여기는 편하게 하던 대로 + 좀 더 살을 붙였어.


전편에선 인터뷰 요청을 하기 위한 선별작업에 대해서 얘기했어. (링크)
오늘은 인터뷰이가 회사에 도착하는 시점부터, 면접 초기 15분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거야. 가장 흔한 상황을 가정해 봤어.

회사에서 열띤 회의를 하고 있는데, 인사팀에게서 행아웃 알람이 울려.

"○○ 직무로 지원하신 ○○○님이 ○○실에 도착하셨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의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안건은 다음으로 미루고 간단한 건 후딱 정리하고 회의를 정리해.
... 그래도 말이지. 30분이나 일찍 오다니. 너무한 거 아냐? 적당히 일찍 오라구. 이 정도면 내 스케줄에 지장이 가잖아.

어쨌든, 나름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실의 문을 열지.

의례 쫙 갖춰입은 면접자가 보여. 아 좀. 편하게 입으라고. 그게 나름의 성의고 문화인 건 알겠는데, 좀 쉽게 가자고^^
MZ세대면 좀 자유로울만도 한데 말이지. 매일 드나드는 회의실이지만 나도 의례상 노크를. 똑똑.

(지원자가 일어나려 하자) "아이고~ 아입니다. 아입니다. 앉으세요. 앉으세요. 안 그러셔도 됩니다."

첫 15분은 과잉 친절의 시간이야. 래포를 형성하는 게 인터뷰의 질을 결정하거든. 낯뜨겁고 유치하긴 해도 유난을 떠는 게 중요해.

"회사는 쉽게 찾아 오셨나요? (강남역 사거리 큰 빌딩에 회사 로고가 크게 박혀 있어서 안보일리가 없지만)"
"갑자기 추워졌는데, 오실 때 괜찮으셨나요? (두꺼운 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걸 보고 있지만)"
"댁이 어디셔요? 아, 거기! 옛날에 저 거기 살았는데, 그 주민센터 뒤쪽으로 떡볶이 가게 맛있는데, 알죠? (한 번 가본 곳이지만 뭐라도 엮어보기 위한 몸부림)"

소소한 사무적인 웃음이 오가는 사이로, 모니터에 이력서와 포폴을 띄워.

후보가 워낙 많아놔서 이 분이 누군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화면을 정리하는 척하면서 내용을 재빠르게 스캔해. 괜히 전체 화면으로 했다가, 반반씩 윈도우를 띄워 봤다가. 시간을 벌면서 내용을 다시 점검해. (제시간에 왔으면 면접 5분 전에 여유롭게 훑어봤을 텐데!)

아, 이 분이구나.

인터뷰를 요청할 때도, 팀원과 상의해 가면서 고민하던 대상이었어. 작업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기복도 좀 있는 것 같고, 회사에서 하게 될 업무와 핏도 조금 안 맞는 것 같고. 이직도 너무 잦지는 않지만 적지는 않고. 직접 들어봐야겠다 싶었지.

반신반의하는 심정이지만, 표정으로는 너무 반가운 척. (마스크를 쓰는 요즘엔 표정을 들키지 않아서 인터뷰 하기 좋아.)

"네, 반갑습니다. 면접 시간은 한 시간 정도일 거구요. 10분 20분 정도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괜찮으신가요?"
 (95% 이상은 "네"라고 대답하지. 5% 정도는, "제가 지금 반차 내고 나온 거라, 조금 후에 들어가 봐야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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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본격적인 면접 시작.

먼저 최근 회사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어. 1년 반이면 나쁘지 않군. 현재 다니고 있는 중이래. 간단히 회사에 대한 질문을 해. 어떤 회사인지, 회사 구성은 어떤지, 팀 구성도 물어보고, 팀 내 포지션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최근 다닌 회사를 물어보는 건, 즉각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난이도 낮은 질문이기도 하고, 현재의 지원자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환경이기 때문이야. 아무리 회사가 싫어서 퇴사하는 거라도, 그 회사의 분위기와 업무 방식이 현재의 이 사람을 꽤 지배하고 있거든. 이를테면, 일상생활에선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도, 전 회사에서 유난히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면, 현재의 지원자에겐 인간관계가 회사를 결정하게 하는 중요 요인이 될 수도 있거든.

때문에, 이전 회사에 대해서 주관적으로 서술하는 방식을 잘 들어둬야 해. 

초반에 '정말 좋은 동료들과 함께 즐겁게 일하는"으로 시작하는 지원자도 있고, "한참 성장하고 있어서 어디에 사옥도 세우고"로 시작하는 지원자도 있어. 대충 무슨 뜻인지 감이 오지? 이 질문은 오늘 인터뷰의 기준점이 될 거야.

그리고, 상황이 괜찮아 보이면, 은근슬쩍 퇴사 이유도 물어 봐. 이 질문이 금기시되는 건 알지만, 이건 꽤 많은 단서를 주기 때문에 입이 근질근질해. 이전 회사에 대한 묘사보다 더 직접적인 단서거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서, 대개 비슷한 이유로 회사를 옮긴다는 게 내 지론이야.

여기서 약간 더 들어가보자.

직전 회사뿐 아니라, 지나 온 회사들의 성격을 죽 되짚어 봐. 3분 내외로 짧게. 이 회사는 SI 회사네요, 여기는 패션 쇼핑몰이고, 디자이너가 몇 명쯤 되나요? (아유~ 힘들었겠어요) 그리고, 전에는 F&B 회사에서 근무했군요... 흐름을 보는 거지.

여기부턴 약간 뼈 때리는 질문이야. 커리어 패쓰에 대한 이야기.

그냥 뽑아주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인지, 뭔가 목적이 있어서 회사를 선택한 사람인지 보는 거지. 뭐 다들 전자겠지만, 그저 뽑힌 회사를 다니더라도, 거기에 어떤 의의를 두는 지도 중요해. 후자라면 최고지. 강한 동기를 가진 지원자는 인터뷰 전체를 즐겁게 만들어.

예상은 하지만, 당연히 "성장을 위해서, 일에 대한 갈증 때문에" 이러저러한 회사로 이동했다고 자신을 포장해. 뻔하지만 더 이상의 답은 없는 것 같아. 누가 "이직 버프로 연봉 올리려구요"라고 얘기하겠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 저런 점프(SI, 패션, F&B로의 흐름)는 어떤 방식의 성장을 위해서 옮겼다는 건지 납득이 안가. ^^ 

하지만, 이 질문은 다음 질문에 대한 밑밥. 중요한 질문은 이거. 

"○○님의 커리어에서, 우리 회사를 다니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성장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요?"

보통은 "당신이 우리 회사에 와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더 공격적으로 묻는 분들은 "내가 왜 널 뽑아야 하지?"라고 묻지만, 난 은연중에 디자이너 선배 행세를 하려 들기 때문에 개인의 의도를 궁금해하는 편이야. 


즉, 이런 뜻이지 :
그래, 성장이 중요한 관심사라고 말하니까 하는 말인데 - 이 회사에 오는 게 네 성장에 어떤 이익이 있겠니?

그런데 이 질문, 좀 어려워. 5년 차 디자이너에게 묻기엔 좀 난해한 형식이네. 좀 더 쉽게.

"경력을 보면, 업종도 다양했고 하시는 일도 약간씩 다르셨어요. 참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으셨을 것 같은데, 한 회사가 다음 회사를 선택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이 회사는 ○○님의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여전히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어쨌든 두 번이나 쪼갠 질문이니 대답은 해.

"A회사는 첫 회사였는데, 규모도 있고 인지도도 있었지만 대표님이 폰트 크기까지 지시할 정도로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셨고, 사람들을 좀 쉽게 대해서 금방 퇴사했구요. 두 번째 회사는 잘 안 풀려서 월급도 밀리고, 거의 떠밀리다시피 나왔구요. 세 번째 회사는... 처음으로 맘 맞는 사람들끼리 즐겁게 일하긴 했는데, 매일 쳐내는 업무들만 하다 보니 한계가 느껴져서..."

나름 중간중간 회사의 장점도 섞어가며 (난 불평쟁이는 아니야!) 얘기하지만, 다 듣고 나면 커리어라기 보단, 주관적으로 자기 역사를 푸념처럼 늘어놓기 일쑤야. 6~70%가 이렇게 이야기해.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면, 서로 가진 정보가 불균형하다는 건 쉽게 잊어버리는데, 이건 지원자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해. 편하게 말하는 건 좋지만, 자신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고, 굳이 설명을 해야 하면 상대가 당연히 알 법한 이야기도 상세하게 말해줘야 해.

보통은 이 정도 캐내는 걸로 마무리하지만, (초반에는 난이도 낮은 질문만 하는 게 원칙이라서) 정말 궁금하면 난이도 신경 쓰지 않고 한 번 더 쪼아 줘. 상대가 좀 긴장한 것 같아. 기껏 초기에 쌓아 둔 래포가 날아갈 판이야. 똑같은 질문이긴 하지만, 좀 더 뻔하고 낭만적인 형태로 질문을 다시 해.

"○○님은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으신가요? 5~10년 후에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정말 재미없고 식상한 질문인 거 알아. 근데, 이거... 질문하는 사람에겐 아주 요긴한 질문이거든. 이 질문 역시 인터뷰 전반의 베이스라인을 잡는 작업이야. 

첫 번째로, 삶 속에서의 직업관을 알 수 있어. 직급으로 (디렉터, 사장, CVO 등) 얘기하는 경우가 제일 많고,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극도로 성과주의인 사람은 "이 회사의 매출을 두 배로 올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봤어.  (영업팀으로 보내드릴까요?^^) 심지어는 따듯한 아버지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사람도 있었지. 

성과지향인 사람에게는 '이 프로젝트가 어떤 성과를 이뤘는지'의 이익적 관점으로 포폴을 이야기하고, 가치 지향인 사람에게는 '어느 부분이 가장 보람찼는지, 어느 부분이 가장 재밌었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뤄. 그래야 상대도 흥미롭게 받아 주거든.

두 번째로,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 결정할 수 있어. 이 질문을 즐겁게 여기고 허공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몽상가적 기질의 사람이라면 보다 솔직하고 편하게, 마치 친구나 선배처럼 이야기하고, "뭐 이런 질문을 하고 그래, 아마추어처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개 표정을 숨기지 못해. 일 얘기나 하자는 거지. 그런 사람들에게는 사무적인 태도로 - 불필요한 얘기도 하지 않고, 사적인 질문도 하지 않고 드라이하게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지.  

여기까지가 면접 시작 후 10~15분에 이뤄지는 일들이야. 서로 긴장해서 조심스럽지만, 또 좋은 태도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가식적이기도 해. 때문에 이 시간에 인터뷰의 결과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최악은, 어느 한쪽이 상대에 대한 흥미를 잃는 건데. 그럼 나머지 시간이 서로 괴롭지. 억지로 붙잡혀 있는 그림이 되는 거야. 

그래서 포폴을 갖고 이야기하기 전에, 나와 상대의 기준점을 잡아 두는 게 매우 중요해. 어쨌든 서로 핏을 맞춰보자고 앉아 있는 거니까. 

오늘의 주제는, '면접 초반에 베이스라인 설정하기'가 되었네. 다음 편은 본격적인 면접, 즉 "포폴을 함께 보며 이야기하는" 과정을 다룰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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