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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돌아보기 : KBS - 새로운 유형의 문제 (02)

보통 어떤 서비스를 개편할 때, 내가 첫번째로 생각하는 건 ‘어디가 가장 문제일까, 잘못 끼워진 단추는 어디일까’야.
기존의 구조가 잘 짜여져 있다면, 컴퍼넌트를 다듬고 불필요한 동선을 조정하는 정도만 해도 확 좋아지고, 구조가 문제라면, 구조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다른 자잘한 문제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라 후반 작업이 쉬워. 트렌드 캐치업이 문제라면, 사장님이 좋아하시는 톤으로만 정리해주면 되는 거고. ^^ 

* 디자이너에 대한 흔한 오해이기도 하고, 디자이너 스스로가 하는 흔한 착각이 이 부분이야. 디자이너는 뭔가를 ‘새롭게, 예쁘게’ 만들어야만 한다는 생각.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 그 ‘새로움, 예쁨’이 - 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거나, ② 기존 유저를 혼란스럽게 한다면 그건 진정한 디자인이 아니라 생각해. 짧게 끝날 프로젝트가 아니라면, 역사를 잘 ‘계열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봐. 가끔 어린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멋진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한다고' 불평하는데, 그런 아이들이야말로 프로젝트가 하려는 얘기를 듣지 못하더라고. 그런 면에서 디자이너는 ‘손’ 못지않게 ‘귀’를 잘 쓸 줄 알아야 해.

암튼, ‘어디가’ 문제일까를 한참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봐도 진단이 안서는 거야. 환자의 증상은 여러 개인데, 병명이 안보이는 거지. 아무리 합병증이래도 주된 병명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 매 페이지마다 문제가 보이기는 하는데, 이 ‘문제’들에 일관성이 있어야 말이지.

 

개편 전 메인페이지 - 보고서에서 발췌 - @rightbrain

 

이를테면, 위 메인화면만 봐도 - 햄버거 메뉴(1)에는 전체 메뉴가 아닌 유틸리티 메뉴 몇 개만 들어가 있고, 각 카테고리(2)는 색깔로 구분해 놓았는데, 이 화면만 벗어나면 저 색상 구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오른쪽 날개메뉴는... 위 4개 버튼은 이 화면을 리프레시하는 버튼, 아래 4개는 다른 페이지를 새 창으로 띄우는 버튼이었어.

현상 자체는 크게 문제 될 건 없었어. 오래된 서비스가 조각보처럼 그때그때 기워지는 건 흔한 일이잖아. 당장의 문제 때문에 전체 플로우를 다 만지려 들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건... 계속 담당자가 바뀌는 느낌이랄까. 여러 시도들의 흔적이지 문제 해결을 위한 땜빵은 아닌 듯했거든. 물론, 아래 이미지처럼 문제 해결을 위한 조악한 땜빵도 있기는 했지만.

 

섬네일 한 칸을 할애해서 공지사항과 채용정보를 넣다니, 미친 거 아냐? (보고서에서 발췌, 실제로는 딱 섬네일 크기) - @rightbrain

 

누구도 이렇게 해결하고 싶지는 않았을 거야. 아무리 초보라도 이런 귀결이 탐탁지는 않았을 거잖아. 햄버거 메뉴든 공지사항이든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양이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끝내야 했을까? 조금 애잔하더라구. 같은 디자이너로서 아픔 같은 걸 느꼈달까. UI든 GUI든 - 하고 싶은 방향이 있고, 그 시도를 여러 번 했지만, 어떤 큰 흐름에 의해서 계속 묵살되는 게 보였어. 즉,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적인 결함이 있다는 걸로 결론지어지더라구. 

 

조직도 - @KBS

 

사실 KBS는 여러 본부로 구성된 연합체의 형상에 가까워. (막연히 상상하던) 중앙집권적인 모습이라기보다는, 여러 회사들의 묶음에 가깝더라구. 풀뿌리 민주주의 같은 거지.

각각의 본부는 자기 나름의 기획/디자인 파트를 가지고 있거나 외주로 해결했고, 서로 협업하기 위한 구조는 너무 약했어. 그나마 디자인을 총괄하는 부서는 이 트리에 들어있지도 않은 - KBS 미디어라는 자회사였는데, 애초에 드라마를 제작하거나 외화 더빙을 하는 등 그야말로 컨텐츠 제작 사업회사이지, UI/UX 업무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지라 한계가 있었어.

디지털 컨텐츠의 중요성이 부각된 건 10년 정도밖에 안되었기에, 이때까지는 '심의실, 시청자센터(CS)' 등 컨텐츠 자체를 조율하는 기관은 있었지만, UX 디자인은 따로 관리되고 있지 않았던 거지. KBS의 대응이 늦었지만 상황을 이해 못할 건 아니었어. SBS, MBC도 KBS보다 고작 1년 정도 빨랐으니까.

누구도 통제하지 않는 구조인 동시에, 누구든 어떻게든 만들어 내야 하는 구조. 이쯤 파악하고 나서야 나는 왜 우리 회사를 모셔왔는지 겨우 이해할 수 있었어. ^^ 시스템을 '개편'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는 거더라구. 국장님께서 전폭적으로 우리를 지원하고, 여러 사람을 모아놓고 '이들이 말하는 내용을 따르라'고 강조한 이유를 그제야 깨달은 거지. (둔하긴!) 

이런 생각을 가지고, 프로젝트 총괄을 하시는 KBS 팀장님(디지털 미디어 운영팀)과 상의했어.

"팀장님, 이거 보니까... 저희가 이 일을 잘 끝내더라도 걱정이에요. 우리 일을 누가 이어받죠?"
"네, 앞으로 디지털 미디어를 전담할 조직을 빌딩하려 합니다."
"아, 계획이 있으신 거군요? 저희 기간 내에 이뤄지나요? 구체적인 타임라인을 알 수 있을까요?"
"아뇨, 아직 말만 - 있어요. 하하”
"언제쯤 알 수 있을까요? 저희 업무 종료 전에 이관을 해야 할 텐데요."
"글쎄요? ^^"

내가 알기로는 그 팀은 동일한 이름으로 (재편되거나 커지지 않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해. 하지만 당시의 나는 팀장님의 말을 믿고, 앞으로의 디자인 계획을 고민하기 시작했어. 보다 큰 규모와 권위를 가진, 그래서 KBS 전체의 디자인들을 통합하거나 조율할 능력이 있는 조직. KBS 팀장님의 말을 바탕으로 - 실제는 없는 미래의 그 팀을 상상하기 시작했지.

그래서, 리서치 업무가 끝나갈 즈음. 내 전략방향은 이렇게 정리되었어 ;
미래의 '그 조직'이 통제할 권위를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이 휘두를 무기를 만들어 주자! ^^

(3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