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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 리브랜딩에 대한 단상 : 왜 다들 싫어하지?

ARTBRAIN 2023. 3. 3. 22:15

© Nokia

이번 주에 가장 핫한 뉴스는 노키아의 리브랜딩이었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는 뉴스겠지만, IT 계열의 일을 하는 4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노키아의 명성은 한때 넘사벽의 파워를 자랑하던 휴대폰 브랜드였고, 절대 고장나지 않는 핸드폰 3310으로 유명했지. 한 때 세계 휴대폰 점유율 1위를 할 때도 있었고. (나중엔 모토로라 통신기술 사업을 인수하기도)

개인적으로는 노키아 폰을 써본 적은 없지만, 상당히 좋아하는 회사 중 하나야. 윤리 경영으로 유명하기도 했고, 심비안과 미고 등 OS 개발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무엇보다 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아서 유명 디자이너와 다양한 협업을 했기 때문이야.


이번에 노키아가 리브랜딩을 한 이유는 매우 단순해.

• 스마트폰 사업과 결별한 노키아의 새 이미지 구축 (폭스콘에 팔았음)
연속적으로 일어났던 사업 실패로 생긴 부정적인 이미지 털어내기
• 형태가 있던 (스마트폰) 사업에서 추상적인 서비스 (네트워크, 기술, 인프라) 로의 전환
• 사람이나 기업이 이름을 바꾸는 이유는 둘 중 하나; 결혼(합병)을 했거나 사람들이 잊기 바라는 재난을 당했거나 - 피터리치


사람에 따라 보는 눈이 다르겠지만, 나는 이번 리브랜딩이 나름 이전의 로고를 이어가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 자세히 보면 N, K, A 등의 기울기나 K의 꺾임, A의 가로대 높이 등이 기존 로고의 특징을 어느정도 반영하려고 노력한 것 같아. 

하지만, 이번 로고는 너무나 기하학적이어서 폰트로서의 특징을 거의 잃어버렸어. 가로획과 세로획의 굵기도 거의 도형의 논리에만 의존한 작도이고, 글자 사이의 여백도 딱히 명확한 단서랄 게 없어. 

OS meego의 전후로, 노키아는 서체에 굉장히 심혈을 기울였단 말이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을 다 모아다가 가이드를 만드는데 - 그 중심을 폰트 제작에 두었을 정도로 서체에 진심인 회사였는데, 로고의 문자적인 성질을 이렇게 무시한다고?

뭔가 글자인 양 써놓기는 했는데, L의 형태는 3개나 되고, 자간은 논리가 없이 제각각이고, 심지어 행간도 달라... 참... ㅠㅠ


그러니까, 이건 이전 로고를 계승하긴 했지만 - "이건 문자가 아니야, 우린 도형으로 쓸 거야." - 라는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들어. 그리고 이 부분에서 사람들마다 호오가 갈린다고 생각해. 전통적인 타입페이스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은 너무 싫어할 거고, 이걸 도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름 좋아할 거고. (나는 후자임)

나는 노키아가 리브랜딩 할 때의 대전제가 이랬을 거라고 생각해.

• 젊고 새로운 느낌을 줌으로써 강한 대내외적 쇄신을 이끌어낼 것
• 필요없는 요소를 넣지 말고, 가급적이면 최소한의 형태만으로 제작할 것
• 강한 구심점이 되어, 노키아의 모든 시각요소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할 것
• (기존 레거시 디자인과 잘 붙을 수 있도록 할 것)


개인적으로는, 미적인 부분을 차치하면, 이 전략은 노키아의 현재에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던 거 같아. 노키아가 저지른 단 하나의 실수라면 하필 그 많은 브랜딩 에이전시 중 리핀코트(https://lippincott.com)를 고른 것. ^^

리핀코트의 장점이자 약점은, 너무 야하고 은유를 모른다는 점이야. 심미적인 관점보다 날카롭게 전략 하나만 보는 디자인.

 

일단 리핀코트는 - 지나치게 주제의 본질적인 면 만을 신경 쓰고, Geometric 서체를 맥락 없이 막 쓰고, 디테일에 약해. 차라리 랜도 정도만이라도 디테일에 신경 써주면 좋겠는데.

이 그라데이션 색상은 이전 디자인 시스템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 같아.

후반작업에 신경을 덜 쓰니, 이런 뻔한 어플리케이션이 나오는 거지. 맥락 없는 3D 개구리라던지, 대학생들도 생각할 수 있는 O의 활용이라던지. 


쓴 내용을 돌아보니 절반 이상이 비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리브랜딩이 매우 좋은 결과라고 생각해. 이걸 이어받은 노키아 내부의 브랜딩 담당자를 믿고 있기도 하고. (바뀐 게 아니라면)

노키아 웹사이트 메인화면

여전히 노키아는 Nokia pure 서체를 사용하고 있고, 새 로고와 어울리는 형태와 규모로 잘 사용하고 있어. 이 부분은 리핀코트의 손이 닿지 않은 것 같고, 그래서 다행인 것 같아. ^^

이런 그래픽은 리핀코트스러워서 싫엇!


로고를 보는 데는 여러 관점이 있겠지. 누군가는 심미성을 볼 테고, 누군가는 비즈니스적인 측면을 볼 테고. 또 누군가는 브랜딩 전략을 볼 테고 말이지.

내가 이 로고가 (꽤) 잘되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아. 

노키아의 히스토리와 현재 위치를 잘 파악했고,
노키아가 지향하는 미래, 비즈니스 전략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그간 유일하게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던 부서^^ 노키아 브랜딩팀을 믿고 과하게 질러봤다는 점.
무엇보다도, 전면적인 리브랜딩의 구심점으로서 방향을 적당히 좁혀 두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 

갈 길은 멀지. 지나치게 원론에 집착했던 리핀코트의 하이텐션을 실용적으로 잘 풀어내고, 열심히 노키아스럽게 조정하는 일이 남았지만, 항상 윤리적으로 경영했고 디자인적으로도 열린 마음을 가진 노키아니까, 나는 좀 더 믿어볼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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