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팬심을 갖고 있는, 광고 회사 울프 올린스가 리브랜딩을 진행했어. (뉴스 링크)
최근 몇 년 동안 리브랜딩 하면 - 로고를 산세리프로 바꾸고 나서
"우리는 최소한의 벡터를 사용해서 로고를 개선함으로써 인터넷 리소스를 줄이는 동시에, 어떤 환경에서도 분명하게 브랜드를 파악할 수 있는 투명한 가독성/시인성을 확보했다. 기존 브랜드 이미지보다 중성적이고 확장 가능성이 넓어졌으며,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동시에 (전기를 덜 쓴다는 점에서) 환경 친화적이기도 하다."
라는 식으로 말하는 게 유행이었잖아. (실제로 이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내용은 대충 비슷)
하지만, 역시나 나의 WO는 이 뻔함을 보기좋게 깨뜨려 주었지. 하하.
산세리프. 그 중에서도 조형적인 감각이 아주 강한 Geometric 계열의 폰트를 쓰고 있지만, 우선 눈이 가는 건 역시나 W야. 도형적인 느낌과 자유곡선의 중간 어디쯤인 구불구불함. 다른 글자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꽤나 문자적 + 규칙적인 도형이지만 얼핏 보기엔 '제멋대로' 구불거리는 느낌을 주는. 꽤 괜찮은 균형이라고 봐. 동시에 작년부터 올해까지 쭉 이어져 온 자유곡선의 폰트 트렌드도 적절히 차용한 것 같고.
그런데, 일반인들이 잘 못 보는 부분은 저 O야.
폰트로서 최소한의 보정만 한 정원을 써서, W의 자유곡선과 대조를 주고 있어. 폰트 기준으로 보면 이 O는, (W 옆의 소문자도 마찬가지) 다른 알파벳과는 약간 결이 다르거든. 사실 서체로서 평가하자면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 로고에 한해서 보자면 꽤 세심하게 조정되어 있다고 생각해.
리브랜딩 하면서 이들이 설명한 내용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을게. (궁금하면 이 링크를 참조하길 바라) 그냥 내가 이해한 걸 말하자면 —
1. 로고들이 산세리프로 바뀌는 요즘 유행의 논리를 부정하진 않아 : 디자인의 작법이 대개 그렇듯, 굳이 세리프 서체를 사용할 이유를 못 찾겠다면 보다 단순한 산세리프를 선택하는 거지.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면 범작이 되는 거야. 우리만의 특이점이 하나쯤은 있어야지.
2. 이전 시대에 의미부여하는 방식은 이제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 이 색깔은 무엇을 상징하고, 이 도형은 어떤 이념을 나타낸다 - 식의 정의는 실용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지. 하지만, 이들이 로고에서 보여주고 있는 건 직관적이고 선명해.
2-1. 기존의 허니옐로 계열에서 크롬-레몬옐로 계열로 주색을 변경함으로써 보다 곡선적이 된 새 로고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어. 즉, 곡선의 양이 늘어남에 따라 바탕색의 명도를 올린 게 아닐까 싶어.
2-2. 구불거리는 게 상징하는 건 (최소한 디자이너들에게는) 이해의 오차가 없을 거야 : 우리는 창의적이고, 구불구불 탐색하며, 재미있고 유쾌하다. 그리고 쭉 따라가다 보면 명징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맨 마지막의 수직선과 마침표는 좀 과하게 드러내고 있지. 점은 없어도 되지 않았을까? 점이 있는 게 더 예쁘긴 하다마는.)
3. 그리고 마지막으로, 위에서 얘기했던 깔끔한 원으로서의 O : 창의력 집단이라고 해서 히피처럼 제멋대로 행동할 거라 생각하지 말아줘. 우리는 명징하고 정확한 산출물을 내놓는 집단이야 - 라는 의미.
4. 로고가 해야 하는 역할은 딱 이 정도 : 과하지도 않고, 의미를 포기하지도 않으며, 직관적이고, 충분히 담론을 만들 정도의 역할.
역시, 이러니 내가 반하지 않고 배겨? ^^ (팬심 때문에 더 좋아 보이는 걸 수도 있겠지만, 객관적으로도 훌륭하지 않음? ^^)
그런데 심지어 웹사이트도 멋짐.
스크롤한 이후에 GNB가 줄어드는 방식도 너무 마음에 들고 (이걸 애플이 왜 안 했나 몰라), 맨 마지막 footer의 로고가 쭈욱 늘어나는 것도 매력적이야. 나머지 요소들은 평범하지만... 이 정도 개성만 얹어주는 게 딱 좋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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