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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왈 노틸러스 리뷰 : 의외의 재미

ARTBRAIN 2023. 6. 15. 14:38

펜사랑은 만년필 구매자의 마음을 잘 아는 것 같아. 우리나라에서 거의 구할 수 없는 펠리칸 M800, M1000 같은 걸 뜬금없이 들여오기도 하고, 세일러에다 엄청난 세일을 먹여서 한정수량을 판매하기도 하고. 소비자와의 밀당을 하는 건 우리나라 펜샵 중 최고인 것 같아. 사람이 많이 몰려서 30분 ~ 한 시간 입장대기한 후에 들어가서 물건 사 본 건 이 사이트가 처음이었어.

이번에 구매한 나왈도, 6시간만 세일해서 파는 것에 혹해서 구매한 거야. '오늘의 특가펜'이라고 해서, 약 4만 원 정도 할인하기에 엄청 갖고 싶은 펜은 아니었지만 호기심에 사 봤어.

© Narwhal

이번에 내가 산 모델은 "Nahvalur(Narwhal) Nautilus Bronze Corydoras"라는 긴 이름의 펜인데, '노틸러스'라는 모델 시리즈에 브론즈 재질을 더한 정도라고 해. 코리도라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무슨 메깃과의 물고기던데, 왜 그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겠어.

항상 나왈에 대해서는 호기심이 있었는데, 가격대가 낮은 것도 아니고 전통 있는 회사도 아니라서 (2019년 창립) 선뜻 손이 가지 않더라구. 할인이 아니었다면 평생 사지 않았을지도 몰라.


위에 링크를 걸었으니 굳이 상세 이미지를 보여주진 않겠지만, 거기서 말하지 않는 내용만 간단히 적어볼게.

먼저 가장 큰 특징은, 생각보다 크고 가벼웠어. 내가 갖고 있는 펜 중에 Lamy Dialog 3(블로그 링크)가 있는데, 형태가 비슷해서 은연중에 무거울 거라고 짐작했었나 봐. 그런데 실물은 전혀 달랐어.

Dialog 3보다 라미 사파리랑 비교하는 게 더 이해하기 쉬울 거야. 길이는 좀 짧고, 두께는 약간 더 두꺼워. 무게는 약간 무거운데 묵직하다고 느껴질 정도는 아니야. 겉보기보단 가벼운 느낌 정도.

실제론 글로시한데 사진은 매트하네 - © Pensarang

캡꽂할 수 없는 형태고, 피스톤 필러 방식이야. 잉크는 중간에 있는 원형창(그래서 이름이 노틸러스, 잠수함)으로 볼 수 있어. 다들 잉크 잔량을 보여주기 위한 창을 은은하게 만들어 두는데, 이건 대놓고 투명한 창을 뚫어놓았어. 특이하고 장식적이야. 브론즈 부분의 장식도 매우 세밀한데, 막 눈에 띄는 화려함은 없지만, 뭔가 디테일이 좋아 보이는 느낌을 줘. 클립은 단단하게 꽉 물려 있는데, 결합부가 워낙 약해 보여서 웬만하면 클립은 사용 안 할 생각이야.

나왈은 미국 회사고, 인하우스 닙을 만든다고 알고 있었는데, 처음에 만년필에 붙어 있던 'Made in China' 스티커를 보고 의심이 들었어. 인하우스닙이라고 해도 미국에서 만든다는 말은 안했... 그런 건가? (Update : 하우징만 중국에서 만든다고 ^^)

중국제에 대한 의심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감은 괜찮았어. 옛날에 중국제를 처음 사고 느낀 충격(블로그 링크)이 있던지라, 뭔가 필감이 좋으면서도 찜찜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괜찮은 건 괜찮은 거지. 스틸닙이라는 느낌을 분명히 주지만, 꽤 부드럽고 탄성도 미묘하게 있어. (이거 진하오 때도 비슷한 얘기를 한 것 같은데...) 그 탄성과 부드러움이 독특한 포지션이라서, 막 쾌적하고 날아다니는 가벼움을 주지는 않는데, 그래도 (탄성이) 느껴지기는 하고 불편하지도 않아. 약간 긁는 저항이 있는데, 사각거리는 거랑은 또 달라. 약간 피로감이 느껴지는 펠리칸이랄까.

닙은 Medium을 선택했는데, 일본 만년필의 M 정도 굵기인 것 같아. 펠리칸 F보다 약간 얇은 느낌. 만일 다시 산다면 B를 살 것 같아. 이 펜은 굵게 나올수록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펠리칸 M600 F닙과 비교

가장 큰 장점은 피드인 것 같아. 펠리칸만큼 피드가 좋아. 처음 쓸 때부터 잘 나왔고, 약간 과하다 싶게 잉크를 뿜어 줘. 닙마름도 많지 않은데 이렇게 뿜어 주니 감사할 따름.

© Pensarang

그립부는 그닥 좋진 않아. 넉넉히 큰 건 좋지만, 경사각과 닙 앞의 턱이 세련되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잡을때도 큰 감흥은 없어. 나사산이 상당히 뒤쪽에 있어서 손끝에 걸리거나 하지는 않아. 그런데 나사산이 너무 많아서, 일반적인 펜보다 한두 번은 더 돌려야 완전히 열리고 닫혀. 이거 은근히 성가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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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

처음에 'Made in China' 스티커만 없었어도 애먼 의심이 들지는 않았겠지만, 뭔가 '좋은 중국제'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그래도 중국제의 특징인 '너희들 부드러운 거 좋아하잖아? 마구마구 갈아줄게.' 하는 느낌은 아니야. 독특한 필감의 포지션을 갖고 있고, 나름 재밌어. 계속 이 브랜들를 살 만큼 좋지는 않아도 - 하나 정도는 충분히 갖고 있을 가치가 있다고 봐.

원래 이런 큰 펜은 큰 글씨에 필압 꾹꾹이도 잘 받아주는 법인데, 이 펜은 필압이 약할수록 필감이 좋아지고 (꾹꾹이로 쓰면 그냥 볼펜 같은, 스틸닙 느낌이 뚜렷해지는데, 필압을 안 줄수록 경쾌한 부드러움이 생겨), 의외로 작은 글씨에 적합하다는 느낌이었어. 실제로도 세워서 쓸 때 좋도록 닙이 연마되어 있어.

할인해서 11만 원에 샀고 지금은 15만 원 정도에 파는데, 안 써본 사람들에게는 한 번 정도 추천해 줄만 해. 취향만 딱 맞는다면 누군가에게는 인생 펜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이제 나는 사 봤으니, 다시 나왈의 다른 제품을 살 일은 없을 것 같아. 그리고 매번 새로운 만년필을 돌려 쓰는 나로서는, 이 펜이 파우치에 들어간 이후로는... 올해 안에는 다시 쓰지는 않을 것 같지만, 아직은 길들이는 단계에 있으니 확신할 순 없어. (70개 정도의 펜을 돌려 쓰는데, 한 번에 두 개 정도를 꺼내 쓰고, 잉입을 1~2번 한 후에 다 쓰면 세척해서 넣어 놔. 가급적 골고루 써 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은근 쓰는 펜만 또 꺼내 쓰게 되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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