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두 방향에서 공부하고 있어.
하나는 시각적인 구현이고, 다른 하나는 논리적인 협업자 생성이야.
물론, 전자가 난 더 재밌지.
평생 해 온 게 '예쁜 것, 좋은 것, 이치에 맞는 것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내는 일'이었으니, 요즘 AI들로 만들어 내는 그림이나 영상을 보면 참 만시지탄이자 감개무량이야. 그림을 배우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참 매혹적이야.
그런데... 그래, 아이디어.
사실이 아니거나 일부에게만 사실인 구상일 뿐이야.
오래된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 입장에서 보면, 말꼬리를 잡지 않을 수 없어. "그림을 배우지 않고도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는 이 환상적인 문장은 일견 멋져 보이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부분이 없거든. ^^
AI는 그림을 배우지 않은 이에게 '환각'을 줄 수는 있어. 그 환각이 정말 실재와 물리적으로, 해부학적으로, 기능적으로 완전히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네가 원하는 이미지를 구현'하는 게 아니야. 애초에 미술을 배우지 않은 일반인은 '원하는 이미지'가 뭔지도 모르기 때문이지. 이는 훈련받은 시각 관련 전문인들도 쉽게 빠지는 환상이야. (카탈로그를 보며 '어머 이거 사야 해. 항상 갖고 싶었던 그것이야'라고 느끼는 순간을 생각해 보면 조금 이해가 쉬울지도?)
픽사의 에드 캣멀은 '창의성을 지휘하라'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했어 : 예술가는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려는 두뇌의 심성모형에 방해받지 않는 법을 배운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본다. 예술가는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몇 가지 관찰 기술을 도구함에 넣어놓고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교육기관이나 예술 및 디자인 현장에서 너무나 '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보는 것'에 대한 담론을 적게 가르치는 것에 불만이 있고, 실제로 학생이나 전문 디자이너들이나 이 '본다'는 것의 가치를 대충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보는 방법을 모르더라도 자신이 잘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필부에게 이 AI 이미지 생성이 주는 모호함은 참 위험하다고 느껴져.
알아. 이거 되게 특권의식이고, 일방적인 판단일 수 있어. 심지어 일반인들의 기준에서는 차별적인 언사일 수도 있어. 그런데, AI를 파고드는 여러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아주 짧게 하고 싶어서 조금 격하게 비약적으로 말하건대 ;
함정에 빠지지 않길 바라.
'대중들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는 걸 자신의 생각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상황'만큼은, 당신이 피했으면 좋겠어.
물론, 이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
하지만 AI 시대에는 '남들도 입으니까' 수준의 인식이 아니라, "이건 내 아이디어이고, 내 취향이고, 내 선택이고, 내 미감이야"라고 주장하는 리플리 증후군 환자들이 범람할 것 같아서 걱정돼. (뭐 요즘도 흔하게 보긴 하지.)
뭐... 잔소리야. 나한테도 해당하는 내용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좀 닳고 닳았으니^^ 내 인생에 큰 문제는 안 줄 것 같은데, 디자인을 10년도 안해 본 젊은이들은 앞으로의 커리어에 AI의 영향이 클 거잖아. 미래가 창창하잖아. 그러니까 걱정이 많이 되더라구. 실제로 그런 현상이 여기저기서 보이기도 해.
물론! 그림을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사람이 AI를 통해서 온전히 자신의 뜻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낼 수도 있어. 하지만 그 확률은 매우 낮아. 초심자의 행운도 있을 테지만. 대개의 경우, 그 천재가 너는 아닐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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