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간 겨울철마다 사용했던 Marley 헤드셋이 망가져 버렸어. 관절 나사가 덜렁덜렁... 고쳐 쓸까 하다가, 그냥 새로 하나 사기로 했지. 말리 헤드셋은 블프 때 70% 할인해서 샀는데, 예상외로 품질이 좋아서 오랫동안 잘 사용했어. 고마워 말리. (지금은 단종된 듯?)
이번에 산 헤드셋은 Marshall Major 3 Bluetooth. 내게는 5번째 마샬 제품이야.
하지만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 건 스톡웰 하나 뿐.
그래... 마샬은 내구성이 정말 최악이야, 쉽게 망가져.
집에 두고 쓰는 스피커는 괜찮지만, 포터블한 기기의 내구성은... - -"; (1) 마이너 이어폰은 두 번이나 고쳤지만 사망 (잭, 케이블 단선), (2) 메이저 역시 케이블 문제와 하우징 변형으로 사망, (3) 마이너 2는 상태가 오락가락할 때 잃어버렸고, (4) 스톡웰은... 여전히 잘 쓰고 있지만, 로고의 붙임새가 불안해.
매번 1~2년을 넘기지 못하고 망가져 버린 마샬인데, 헤드셋을 사기로 했을 때 난 또 마샬을 골랐어. 왜?
내가 원하는 소리를 내 주니까. ^^
물론 디자인도 구매욕을 자극하지만, 마샬은 확실히 락, 메탈 음악을 들을 때 출중한 능력을 보여줘. 특히, LP와 카세트 테이프 시대의 밴드 음악을 잘 표현하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 레드 제플린과 AC/DC처럼 넓고 투박한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높은 음의 보컬과 펜더 기타, 찰랑대는 하이햇. ^^ 클래식 기준으로는, 대부분의 관악기를 잘 표현하고 타악기 계열도 괜찮은데, 높은 음의 현악기나 피아노는 약간 바랜 듯한 느낌으로 들려. (treble이 조금, 여전히... 아쉬운) 베이스도 충분히 잘 들리고, 해상도도 괜찮아. 내 귀가 들을 수 있는 저음까지는 다 잡아주는 것 같고.
Major 1이 출시됐을 때, 누군가가 "Led Zeppelin의 Since I've been loving you에 가장 맞는 헤드폰"이라고 리뷰했는데, Major 3는 AC/DC의 Back in Black, 또는 Rolling Stones의 Beast of Burden이 더 맞는 듯. 좀 더 감칠맛이 강조된 음악.
한참 음악과 음향기기에 진심이었던 20대 후반에는, '하이엔드가 맞고 내가 틀리다'는 생각을 했었어. 그래서 이런 '주관적인 튜닝'이 나쁜 거라 생각했지. 아티스트의 의도가 내 귀에까지 온전히 들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정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해 주는 게 최고겠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이어폰/헤드셋이 해줄 수 있는 현실적인 퍼포먼스를 생각하면, 예민한 것보다 잘 몰아주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소음 속에서 정밀한 객관성이 쾌적한 청음 경험에 정말 도움이 될까?
애초에 이어폰/헤드셋이 그러라고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잖아. 공간과 장소의 한계를 밀어낼 순 있어도 이길 수는 없지. 공간과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듣고 싶어하는 음을 인공지능 마냥 이해하기 쉽게 뿜어 주는 게 이어폰/헤드폰의 진정한 역할이 아닐까 싶어. 물론, 청음실에서 감상을 위해 사용하는 오픈에어형 헤드폰은 제외해야지. 그건 머리에 쓰는 스피커 같은 거니까.
요즘 휴대기기의 방향이 ANC쪽으로 가는 것도 같은 이유일 거야. 본래 음을 잘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음을 잘 통제하는 게 더 효율적이란 걸 알게 된 거지. 일상적인 환경은 소음으로 가득 차 있고, 하드웨어 기술은 상향 평준화되었고, 그것보다 더 좋은 음질을 내려면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텐데, 하드웨어에 공들이는 대신 디지털 기술을 쓰면 적은 비용으로 보다 높은 효율을 낼 수 있으니까.
마샬에서도 MID ANC라는 제품을 출시했고, 애플이나 소니도 다 ANC 기술을 시도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ANC가 어색해. 내 주변의 시끄러운 환경을 눈으로 보고 있는데, 귀만 조용한 게 너무 어색한 거야. 인지부조화? ^^ 게다가 나는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 다닐 때 쓰는지라, 안전성 측면에서도 ANC는 좀 위험하게 느껴져.
이 헤드셋이 취향을 타는 튜닝을 했다고 해서, 사운드를 왜곡하는 형태로 개발되었단 뜻은 아니야. 나름 객관적이고, 가끔은, 가.끔.은. 놀랄 만큼 해상력이 좋게 느껴져. 이걸로 90년대 우리나라 대중음악을 들으면, 얼마나 멀겋게 펴 놓은 소리인지 바로 느낄 수 있을 거야. 혹시 우리나라 아이돌 음악이나, 공간감이 필요한 OST 등을 자주 듣는다면, 인공적인 소리를 잘 받아주는 Marley 시리즈나, 관용성과 공간감 좋은 AKG 쪽으로 가는 게 맞을 거야.
그에 비해 마샬은 - 자기들이 좋아하는 디테일을 들려주려는 의지가 있어서, 그 밖의 음악에는 그닥 관대하지 않아. 작은 이어컵도 영향을 주는 거 같아. 40mm 다이나믹 드라이버에 32Ω 임피던스면 뭐 그냥저냥 관용성이 있어야 하는데, 비슷한 규모의 헤드셋보다 30~40%는 작은 하우징이다 보니... 공간감 있는 소리를 못 만드는 거지. 대신, 빠지는 소리는 없어. 귀에 꽉~ 끼거든. ^^
항상 내구성에 문제가 있었던 케이블이 이 헤드셋에는 없으니까 - 오래 쓰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것도 좀 부실해 보여. 특히 크기 조절하는 관절과, 함께 구부러지는 케이블이 계속 눈에 거슬리네. (여러 번 당해서 그런가.)
두 번째로 걱정되는 부분은 마이크로 5핀 충전 포트인데... 알잖아 - 5핀 규격은 쉽게 망가지는 거. 그래서 USB-C와 무선 충전을 지원하는 Major 4를 살까 하다가, 무선 충전하는 곳이 이어컵 부분이라 - 내부 공간 문제나 좌우 균형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3으로 샀어. (게다가 충전 패드 미포함이라서 - -;)
편견 가득한 변호를 하다 보니 단점을 얘기하지 않았네. (아니, 충분히 얘기했나? ^^)
제일 큰 단점은 물론 내구성 걱정이고, 두 번째 큰 단점은 - 작아. 소두를 위한 헤드셋. 광고에 나오는 모델들은 머리가 얼마나 작은 거야! 대두에게 절대 불리. 군대에서 58~59호 전투모 썼던 난데, 꽤 답답해. 메이저 초기 모델과 달라진 게 없어. MID ANC나 Monitor II ANC처럼 좀 더 여유를 줬으면 좋았을 텐데. 또, 케이스 미포함이 아쉬워. 폴딩 방식이나 관절 부분 때문에 보호가 필요해 보이는데, 흠.
그리고, 음질에 대해서 칭찬만 한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효율성을 생각해서 한 말이야. 블루투스는 블루투스지. 말했듯이 - 하이 피치, 트레블이 아쉬운 건 마샬 휴대기기 공통의 약점이고... 모니터용 헤드폰처럼 분명한 해상도를 기대하지는 마. 적당히 주변 소음이 있어줘야 음질이 좋다는 착각을 주니까, 가급적 야외에서 듣길 바래. (조용한 곳에서는 이걸로 재즈나 들으면 딱이지.)
정리
- 찰진 소리, 옛날 락 애호가들에게 추천.
- 디자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
- 머리 작은 사람에게 추천.
- 활발한? 환경에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추천.
- 물건 잘 망가뜨리는 똥손에겐 비추.
- 귀가 발달한 골든이어스 멤버들에겐 비추.
- 자신이 대중적인 음악 취향이라면 비추.
- 머리 큰 사람에게 비추.
ps.
꼭 보증서와 시리얼 확인할 것. 워낙 짝퉁이 많아서 함부로 사면 안될 것 같아. 국내에선 '소비코'에서 수입하고, 플라스틱 카드에 바코드 붙여서 함께 동봉해서 주더라구. 짐작하기로는 - 하우징을 중국에서 찍어내고 미국에서 전반적으로 조립하는 모양인데, 중국발 제품은 드라이버 등 내부 부품을 싼 걸로 넣어서 보내나 봐. 인터넷을 찾아보니, 짝퉁 구별하려면 aptX 지원하는지 확인해 보라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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