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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돌아보기 : KBS - 어디부터 손대야 하지? (01)

ARTBRAIN 2020. 5. 19. 10:57

KBS 전경 - @wikipedia

솔직히, 처음엔 두근거렸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을 알고 있는 방송사의 디지털 언어를 내 손으로 개편한다는 건 참 엄청난 일이잖아. 

동시에 겁나기도 했었어. 그 당시 가용할 수 있는 디자이너도 마땅치 않았던 데다, 기간도 썩 길지 않았거든. 최소 20명에 1년 이상은 필요하다고 그토록 어필했지만, 실제 초도 투입 디자이너는 예닐곱명? 물론 조금 지난 후에는 우리 팀 다 붙고, 타 팀장 둘 빌리고, 그 팀원들 두어명씩 더 붙었으니, 중후반에는 한 열 대여섯명 되었겠네. 

그래도, 자신은 있었어. 마침 그 때는 전에 했던 중앙일보 디지털 개편이 언론사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고 있던 때였고, 후발주자들의 스탠다드로 참고되는 시기였거든. 회사의 업력도 작용했겠지만, 어쨌든 KBS에서 애써 우리와 일을 하려 한 것은 중앙일보의 성과 때문이었기에 이들이 어떤 걸 원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힌트가 충분했지.

중앙일보 디지털 개편, 2015 - @rightbrain



조금 자뻑도 있었어. 중앙일보 프로젝트를 통해 텍스트 기반의 플랫폼 사업에 이미 자신이 있었던 데다, 이전 티빙 프로젝트를 통해 미디어 플랫폼의 속성이나 운용에도 나름 노하우가 있었으니까. 뭐 딱 내 꺼다 싶었지. ^^

벌써 10년 전인건가? 초기 티빙의 모습. nScreen 작업이라 많은 공부가 되었던 프로젝트



2016년 1월에 킥오프를 진행했지만, 실제로 업무는 한달 정도 전부터 시작했어.

전체 이해관계자를 모시고 진행한 첫 발표 - 페북에 올린거라 로고를 가렸음

일단, 이 프로젝트가 다른 프로젝트와 다른 점은 바로 이 - 엄청난 이해관계자의 수였어. 각 지역국의 자치도가 높기도 하고, 역사가 길기도 하니 어쩌면 당연한 거지. 말이 정규직 4500명이지, 전국적으로 퍼진 규모와 계열사들 규모까지 따지면 어마어마 하잖아. 저 회의에 참여한 관계자만 해도 100여명 정도였으니까.

예상하지 못했던 건 오히려 KBS에 대한 내 선입견이었지. 예전엔 국영기업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시청료를 받는 회사이기 때문에 - 뭔가 중앙집권적이고, 비영리적이며, 이해 회피적인 조직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아. 이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얘기였는데, 공무원적인 사고는 맞지만, 권력은 그렇지 않더라구. 중앙통제라기보다는 각각의 지역국들과 프로그램들이 각자도생하는, 나름 그들만의 열정, 자존심 같은 게 있더라구. 

돌이켜 보면, 내가 순진했지. 밖에서 보는 KBS는 참 전형적인 조직이잖아. 충분히 자기 분야를 선점한 거대 기업이고, 국가적인 책임이 있는 동시에 안정적인 환경이 조성된 - 전형적인 공무원 기업이지, 보수적인 따분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돌이켜 보면, 어떤 조직이든 그들만의 동인이 있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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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관계자를 쪼개보면 다음과 같아.

  1. 컨텐츠 제작자 그룹 : 빠른 호흡과 성과주의가 강하지, 아무래도 시청률이라는 지표가 분명하고, 그 결과값이 개인의 인생을 바꿀 정도로 극명하게 나뉘니까, 자신의 컨텐츠에 대한 애착이 강하지.
  2. 지역국 그룹 : 각각의 지역국 성격이 워낙 달라서, 한 형태로 묶는 게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봐.  
  3. 전략/편성/기술 : 각 컨텐츠들의 관리/조율 및 공공사업분야 (ex. 재난서비스) 서비스 개발. 특히 각 요소들의 협업을 잘 만들어야 하는 이슈가 있지.
  4. 뉴스 : 특수한 상황이야. 이들은 나름의 독자적인 생태계가 있고, 독립성이 보장되는 그룹이어야 하지.
  5. 미디어 그룹 : 사실은 본사 바깥에 있어. 뉴스를 제외한 모든 컨텐츠의 디지털 화면을 제작하는 부서... 라기보다는 회사지. 항상 업무가 많고, 각각의 힘에 밀려서 디지털 화면조차 장악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어.

물론, 이 분석은 개인적인 감상에 가까워. 아무리 디자인 총괄이래도 기획 파트보다야 구조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겠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초반에 분석한 KBS의 모습은 좀 암담했어. 어떤 걸 하더라도 이것보단 낫겠구나 싶어서 내심 안도는 했지만, 이런 산만한 형태가 된 데에는 이 조직의 한계도 있다는 얘기잖아. 남들이 못한 곳에서 내가 잘하기는 힘든 법이니까 불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일단은, 두 개의 채널로 시작했어.

  1. 모을 수 있는 데까지 KBS의 자료를 수집하기. 워낙 다양한 형태가 있다보니 유형을 파악하기 어려웠어. 분류가 불가능할 지경이었으니까.
  2. 1번의 결과로 호기심이 동했던 부분인데, 누가 어떻게 디자인+UI를 결정하는 지 알아보기. 국장님의 전폭적으로 권한을 준 탓에 두루두루 쑤셔(?)볼 수 있었지.

기획이 달리는 동안, 나는 “누가” 디자인하는지가 궁금했어. 형태가 일정하지 않고, UI도 그때그때 달랐으니까.
통제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없는 걸까?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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