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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리뷰 : 말하는 자는 누구인가? 🙈

ARTBRAIN 2023. 6. 4. 03:32

문제는 주인공의 인종도 외모도 아니었어. 그냥 영화 자체가 너무 별로였어.

오히려 할리 베일리의 노래 실력은 원작 애니메이션의 가수보다 낫게 느껴졌고, 외모의 문제는 — 보다 보니 적응이 됐어. 확실히 스틸로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을뿐더러, 어느 장면에서는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어. 할리 베일리는 이미 가수로서의 커리어를 제법 쌓은 아이잖아? 나름의 매력이 없었다면 그럴 수 없었겠지. (미의 기준에 대해서는... 말하면 엄청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

Emma McIntyre / Getty Images for NYX Professional Makeup file

영화를 보고 나서 내게 떠오른 첫 문장은 '영화를 정말 성의 없이 만들었다'는 생각이었고, 이게 의도적인 일일까봐 두려웠어. 

롭 마셜, 꽤 괜찮은 감독이잖아? 애니, 시카고, 캐리비안의 해적 4, 메리포핀스 리메이크 등 커리어도 훌륭하잖아. 해양 영화도 찍어봤고, 뮤지컬 영화도 해 봤고, 리메이크도 여러 번 경험했고, 캐릭터 빌딩하는 능력도 괜찮고, (무던하지만) 편집도 괜찮게 하잖아. 여러모로 '인어공주' 실사 영화감독에 적합한 인재인데 말이지. 심지어 '캐리비언의 해적 : 낯선 조류'에서는 인어에 대해 디테일하게 연구해 보기도 했고. ^^

'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 조류'에서의 인어 - © Disney

그런데 이번 영화 '인어공주'에선 그의 단점만 잔뜩 드러났어.

'캐리비안의 해적'을 만든 감독 치고는 바다 씬을 참 소박하게 만들었고, 어떤 장면은 레안드로 안드리히의 설치작품에서 촬영한 것처럼 이질적이었어. 인어공주의 피부는 너무나 건조해 보였고, 어딘가에서 잭 스패로우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화면은 어두컴컴.  (디즈니의 엄청난 돈을 모두 배우 섭외에 쓴 걸까? 사실 그가 만든 캐리비언 시리즈도 전편들에 비해 바다 촬영보다 스튜디오+육지 촬영이 많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ㅜㅜ)

© Leandro Erlich - Swimming Pool

비단 촬영과 무대, 미장센의 문제만이 아니야. 그저 생각 없이 애니메이션의 모든 걸 그대로 베끼는 수준이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전체 내용에 전혀 녹아들지 못해서, 마치 원전에 맞지 않는 주석을 잔뜩 붙여놓은 느낌이랄까. 전체적으로 감독의 자의식이 있긴 있는 걸까 싶을 정도였어.

너무나 미심쩍어서, 집에 오자마자 옛날 애니메이션을 다시 봤어. 놀랍게도, 거의 모든 부분을 각색 없이 처리했더라구.

바뀐 건 — 비인간형 조연들을 진짜 생선으로, 아틀란티스를 캐리비언해(감독의 스스로에 대한 오마주일까?)로 바꾼 것. 바닷속 왕국이나 육지 위 왕국을 읍면 규모로 축소한 것 정도. 

캐릭터성이 극대화되는 애니메이션 속 동물을 실사화하려면 그만큼의 역할 변화, 또는 실제 동물에 어울리는 각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장소가 바뀌거나 인종이 바뀌어서 꼬이는 부분이 있으면 플롯으로 보강해야지. 옛날에 입양했네 어쩌네 하는 정말 영양가 없는 부연설명으로 풀면 안 되는 거잖아?

애니메이션 특유의 점프 컷이나 연결(쇼트/씬/시퀀스 모두)을 그대로 따라한 것도 정말 이해가 안 돼. 만일 감독이 '원작을 존중하기에 변형하지 않았다'라고 답한다면 정말 그건 자기기만일 거야. 애니메이션과 실제 인물의 움직임은 텐션이나 리듬이 다를 텐데, 억지로 애니메이션의 명장면을 보여준답시고 찰랑이는 생머리를 넘기며 물 뿌리는 장면을 드래드락스 딴 머리로 재현하질 않나, 몰래 숨어보는 장면의 애니메이션 움직임을 따라 하느라 애를 좀비처럼 움직이게 만들고, 정말 만화적으로 일어서는 장면을 그대로 따라 하니까 바다사자가 배치기 하며 바위를 올라가는 느낌이고... ㅠㅠ

애니메이션 따라잡기 워스트 3 - © Disney

이번에 감독의 각색이 들어간 건 정말 적은데, (1) 도입부에 소설 원문의 눈물 얘기를 인용한 후, 끝부분에 주인공의 눈물을 보여준 것 (2) 남자 주인공의 솔로 노래를 만든 것. — 기억나는 건 이 둘 뿐이고, 심지어 전자는 뭘 전달하려 했는지도 모르겠어. 


나는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나머지, 어쩌면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는 걸까 의심하기 시작했어.

제일 처음 생각했던 건, 제작진이 행정적인/재정적인 큰 실수를 해서 매우 빈약한 시간/예산으로 급하게 완료해야 했다는 가설인데, 차라리 이게 사실이길 바라. (실제로 롭 마샬은 이런 혐의가 처음이 아니야^^)

다른 가설은 더 싫기 때문인데 —

고전 애니메이션의 실사화 및 PC 한 관점으로 영화를 만드는 게 2005년 디즈니의 CEO 자리에 밥 아이거가 취임하면서부터였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잖아? 그런데 동시에 그의 업적으로 인정받는 건 픽사, 마블, 루카스필름 인수를 통한 콘텐츠 영향력의 확대와 많은 도시에 디즈니랜드를 세워서 재정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거거든.

전형적인 야심가적 인물이야. 실제로도 정계 쪽에 가까이 연결되어 있고, 여러 번 정치자금 기부를 하기도 했어. 스스로 '내가 정치를 한다면, 어설프게 상하원 의원 따위는 안 할 것이다'라며 자신의 야망을 드러낸 적도 있고.

© Fortune / © Foucault

여기서 갑툭튀 푸코의 말이 생각났어 : 말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 모두가 섬세하게 설계된 것은 아닌가 싶은 거지. 인종끼리 서로 대립하게 하고, 페미니즘과 관련한 대립도 건드리고... 그런데 감독이 너무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서 이 모든 갈등의 주제들을 압도하면 안 되니까, 한물 간 감독을 캐스팅한 후 갖은 수단으로 조악한 영화를 만들게 해서 더 큰 것을 얻으려 한 것은 아닌지.

실제로 실사 영화 제작을 하면서부터 많은 영화들이 논란에 올랐고, 이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 ≒ PC)' 성장통이고, 숨겨져 있던 + 숨기고 싶던 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겪는 자연스러운 정반합의 과정이라고 여겨졌어. 아직 사회가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보적인 이야기를 하면 내홍이 생기는 건 당연한 거다... 뭐 그런 논리. 전형적인 "높은 고지 점령하기"잖아. 스무스하지.

하지만, 여전히 백인 등장인물은 미남미녀의 전형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에릭왕자가 입는 옷, 그 왕국의 문화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것이야. 주류 서구인들의 미감, 전통 서구 문화에 대한 선망 등 진짜 헤게모니의 핵심을 건드리지는 않고, 마치 wierdo 한 것은 비-백인들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미감이라는 듯이. — "(서양 주류세력 왈) 너를 존중하기는 하지만 너와 나는 다르고, 이런 식의 아름다움은 내 것이니까, 너는 저 쪽에서 네 나름의 아름다움을 찾아보려무나."하는 거 같지 않아? 재수없는 방식의 선 긋기.

원작에서도 선 긋기를 하기는 해 - 수중은 가부장 사회라서 여성을 속박하는 음습한 곳이고, 육상은 '두 발로 스스로 설 수 있는' 자립과 자유가 보장되는 희망찬 사회로 표현하기는 하지.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이걸 아주 부드럽게 녹여내어서 전혀 자극적이지 않은데, 이 영화는 너무 평면적이어서, 그냥 수중은 '악'으로 표현하는 수준. 그러면서 화합을 말한다고?

애초에 롭 마셜 감독이 이 영화가 지향하기로 했던 방향에 대해 이해가 없었다고 하면 간단한 일이겠지만 (겉으로만 깨시민), 디즈니가 개입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겠어? 롭 마셜 감독은 - 마치 괴뢰국에 심어놓은 바보 황제 같은 거 아녔을까? 그리고 나름 그쪽 세력에게는 원하는 결과를 안겨 준 게 아닐까?

어휴.


(사족)

캐런 앨런의 엉뚱미 버전 인어공주도 재밌지 않을까 싶음.털털한 여성상은 외않됨? 응? 스코티시 레드헤어에게 자부심도 주고 말이지. 얘는 레드헤어인 것 뿐만 아니라, 연기도 잘하고 액션도 잘해. 모든 배역에 녹아드는 것도 항상 진심이고. 노래...는 잘 모르겠지만. 
( 이 단편에서의 성격 그대로 인어공주를 연기한다면 꽤 재밌지 않겠어? - https://www.youtube.com/watch?v=muZnCSTrq0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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