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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5일 : 위험한 특종 (2024) - 별 넷, 노 스포 리뷰

ARTBRAIN 2025. 2. 17. 18:54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야기일 수도 있어서 약간의 배경 설명으로 이야기를 시작할게.

1972년, 서독 뮌헨에서 올림픽이 열려. 나치 치하에서 열렸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이후 36년 만에 독일에서 열리는 국제 행사인데, 엄밀히 말하면 뮌헨 올림픽의 주체는 "냉전 시대의 미국의 힘을 업은" 서독이었어.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1945)한 이후로 세계는 미국-소련의 양극 구도로 정리되고 있었고, 두 세력이 맞부딪히는 독일(의 서독)은 미국에게는 매우 좋은 선전도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뮌헨 올림픽은 서독의 나치 지우기미국의 파워 과시가 두 축인 이벤트였어.

우리에겐 손기정 옹의 금메달로 기억되는 1936 올림픽. 개회 선언은 히틀러가 했음

미국으로서는 베트남 전쟁(1964 미국 개입)에서의 엄청난 삽질과 여론의 뭇매 때문에 외부로 시선을 돌릴 곳이 필요했고 (1973 종전), 68혁명의 여파가 여전히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잠재되어 있던 여러 후유증과 에러들이 다시 불거져 나오는 시기이기도 했어. 아일랜드에서의 피의 일요일 사건이나 한국에서의 박정희 유신독재가 딱 1972년의 일이었지.

겉으로는 데탕트 시대(냉전이 끝난 줄 알았던 잠깐의 화해 무드 기간)였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두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만큼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간이 흐른 시기였으니, 어떻게 보면 1,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여진이 일어난 시기가 아닐까 싶어.

미국은 이미 1920년대부터 세계 뉴스의 중심이었지만, 미국이 세계 "역사"의 중심에 선 시기는 1960년대 중반부터라고 할 수 있어. 뮌헨 올림픽 직전의 굵직한 사건을 보면 (위 이미지의 좌측부터) 반베트남전 반전운동, 달착륙, 히피 문화와 우드스탁 페스티벌 등이 있는데, 모두 시각 이미지가 중요했다는 점에서, 1960년대 말부터는 본격적으로 미디어 기반의 뉴스가 이전의 '전보를 통한 뉴스'를 막 대체하던 시기였음을 알 수 있어. 마샬 맥루언이 "미디어는 마사지다"라는 책을 낸 시기가 바로 이 즈음(1967)이기도 했지. 즉, 미국이 미디어를 이용해서 세계를 장악하기 시작한 시점이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라고 봐도 무방해.

아무래도 영화의 주무대가 방송국이다 보니 기술적인 배경도 덧붙여야 할 것 같은데, 컬러 TV가 발명된 건 1920년대 말의 일이지만, 실제로 미국 내에서 본격적으로 컬러 TV가 보급되기 시작한 건 1960년 중반부터였고, 뮌헨 올림픽 때에는 미국에 흑백 TV보다 컬러 TV가 더 많았다고 해. 

@paramount @ KBS

하지만 아직 VTR, VHS 등의 비디오 포맷이 등장하지는 않은 시기라서, 왼쪽 이미지와 같은 스튜디오 카메라는 있었어도, 오른쪽 이미지와 같은 ENG 카메라는 아직 개발되기 전이었어서, 야외 촬영은 전통적인 16mm 필름 카메라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일일이 촬영-현상-출력의 과정을 거쳐야 했었어. 엄밀한 의미의 생방송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었지.

요즘에야 미디어와 통신 사이의 경계를 나누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영상기술만큼 통신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상황이었어. 전화국을 통한 유선 전화는 충분히 보급되었지만, 여전히 전략적인 통신은 전보에 의존하는 상황이었고, 미국-소련간 우주 개발 경쟁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위성 통신 기술이 있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빈약한 시기였어서, 여러 방송국이 하나의 통신위성을 시간 단위로 나눠 쓰던 시절이었어.

마지막으로, 테러 자체에 대해서는 사전 지식이 적은 게 영화 감상에 좋을 것 같아서 간단히 짚고만 넘어갈게.

나치 이후의 독일은 유대인에게 사과하고, 두 민족은 어색한 화해를 시작하던 시기였지만, 동시에 중동에서는 유대인(이스라엘)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영토를 계속 점령해 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어. 선후 관계라고 하기엔 어렵지만, 중동의 테러단체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었지. 이를 바탕으로 '뮌헨 참사'를 짧게 요약하면 -  중동 테러리스트들이 팔레스타인 포로의 석방을 요구하며 이스라엘 선수들을 독일 땅 위에서 납치/살해한 사건이야. 이 시기의 독일은 아직도 전범국의 제약이 있었기에 뮌헨에 군인이나 특전사 등을 동원할 수 없는 환경이었고, 애초에 이런 테러가 거의 처음이라서 매뉴얼이 없기는 언론이나 군경 모두 마찬가지였어. 


© paramount

여기부턴 영화 리뷰야. 예고편에 담긴 범위 내에서만 얘기할게.

abc 스포츠국은 스튜디오 근처에서 일어난 뮌헨 테러를 확인하고 빠르게 중계권을 장악하려 해. 이건 세 가지 생각이 얽혀 있는 판단인데, 언론인으로서 큰 뉴스를 독점하겠다는 욕심이자,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겠다는 직업적 집착이고, 미국인으로서 자국의 이익을 생각하는 정치적 선택이기도 했어. 테러라는 갑작스러운 상황 앞에서 이런 여러 욕망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빠른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 - 초반 30분은 이런 판단의 기로에서 각 인물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묘사하는 장면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부분이 정말 압권이야. 대사 하나하나를 허투루 쓰지 않아서, 몇 마디 말과 행동만으로 시대적인 배경과 각 캐릭터를 한꺼번에 설명하고 있어. 왜 각본상 후보가 되었는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겠더라구.

개인적으로는 왕좌의 게임(의 전반기 시즌)에서 새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는 기술이 대단했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그것보다 훨씬 깊이 있고 함축적인 묘사를 보여줘. 이 구성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 영화의 주제, 중요 키워드를 등장인물이 마구 내뱉는데 전혀 어색하지도 오그라들지도 않아. 트레일러에 발췌한 것만으로 영화 전체를 이해할 수 있을 지경이야. 너무나 말끔해. 

트레일러를 소개하는 게 스포가 될까? (링크) 이 영화가 얼마나 대사를 대담하게 지었는지를 보려면 아래 이미지를 대충 살펴봐도 좋을 거야. 트레일러에 중요한 영화의 주제가 거의 다 녹아 있거든. 트레일러도 보지 않겠다는 사람은 과감하게 스크롤하도록.

© paramount


전보 시대에는 언론이 뉴스 의제를 설정할 수 있었어. 전보(와 사진술) 시대의 사건은 데스크에 도착하여 검토당하고, 의미를 부여받으며, 정제된 언어로 재단한 - 공인된 뉴스만이 대중에게 제공되었지. 그래서 일반인들은 기자가 카메라로 포착한 구도만 볼 수 있었고, 데스크가 선택한 단어들만 읽을 수 있었지. 기껏해야 행간을 헤매어 약간의 비밀스러운 정보만 얻어낼 수 있는 상황이었어.

하지만  영상 시대부터는, 데스크가 아무리 통제를 한다고 해도 완전히 대중(의 이해방식)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어. 비디오는 해석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개개인의 뇌에 꽂히거든. 데스크는 영상의 모든 픽셀 하나하나를 통제할 수도 없거니와, 영상 시대부터 더 중요해진 즉시성의 압박 때문에, 데스크의 판단은 영상을 찍느냐 마느냐일 뿐, 이전처럼 '어떻게 대중이 이 뉴스를 판단하게 유도할 것이냐'는 데스크의 통제 범위 바깥으로 밀려나게 되었지. (물론, 언론은 이후 수 년 내에 - 영상을 활용해서 더욱더 교묘하고 악랄하게 의제 설정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 때는 아직 그 정도의 학습이 되진 않은 상황이었어.)

자, 등장인물은 스스로도 통제하기 어려운 '영상'이라는 무기를 들긴 들었는데... 자신과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이 사건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명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어. 당황스러워. 언론인으로서 어떤 책무가 있는지를 스스로 재정의해 나아가야 하는 주인공들은 영화 내내 삐걱거려. 만일 이들이 정치사회부(영화에서는 '보도국') 출신이었다면 이야기는 조금 뻔해졌을지도 모르지만, 이 주인공들은 정치사회적인 뉴스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익숙하지 않은 스포츠국 사람들인 게 참 공교롭지.

이 영화는 결국 '어설픈 미디어 시대에 어설픈 언론인들이 잔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어설픈 판단과 선택을 하는 영화,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놓고 고민하는 영화'야.


테러라는 긴박함이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어떠한 액션도 없어. 이를 강화하기 위해 카메라는 거의 대부분 스튜디오 내부에 머물러. 영화를 보는 작은 팁이라면, 영화의 아주 일부 장면만이 스튜디오 바깥을 촬영하는데, 다큐멘터리 질감을 표방하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영화적인 은유가 이 '실내/실외' 구성이라고 생각해. 이걸 살펴보는 것도 재밌을 거야. 

© paramount
© paramount

이렇게까지 좌우를 비네팅(?)하는 영화가 또 있을까? 이 영화에서 스튜디오 씬은 시종일관 좌우를 시커멓게 처리하는데, 사람의 뒷모습을 이용해서 가리기도 하고, 조명을 빼서 암부로 놔두기도 해. 좌우까지 초점이 맞는 장면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지.

그에 비해서, 스튜디오 바깥은 플랫해. 좌우를 날리지 않아.

왼쪽은 영화에서의 실외이고, 오른쪽은 진짜 현장 영상이야. 왼쪽은 아직 등장인물이 실내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왼쪽을 시커멓게 날렸지만, 오른쪽 이미지와 같은 '진짜 당시의 화면'은 매우 플랫하지. 이 대비는, 스튜디오 실내를 마치 한 사람의 뇌로 은유하는 것 같아서, 전체적으로는 다큐멘터리의 톤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제한된 인원으로 만들어진 무대극이라고 할 수 있어. 어찌 보면 인사이드 아웃의 다큐멘터리 버전인 거지. ^^

콘솔 앞의 캐릭터들 - © pixar, paramount

그래서 나는 이 장면을 제일 좋아해.

© paramount

담배를 피우기 위해  살짝 연 문 틈으로 총성이 들어오는 씬이야. 실외가 처음으로 실내에 영향을 주는 장면이자,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가짜 실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야.

스튜디오(실내) - 1972년 실제 영상에서의 실외 - 1972년에 촬영된 스튜디오(실내) - 이 영화에만 존재하는 실외 : 이렇게 네 개로 나눌 수 있는 영화의 시공간적인 층위는 해체주의, 구조주의적으로도 해석 가능할 것 같은데, 내 능력도 없거니와 글도 길어지니 생략. 그런데 이거 재밌어. 머릿속에서 살살 굴려보기 좋아.


영화는 사건의 전개에 맞추어 끝까지 긴박하게 진행돼. 초반엔 주로 '언론은 사건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다루고,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언론이 사건에 필연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을 묘사해. 초반에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는 듯이 당당하던 인물들은 중반이 넘어가면서 사건에 압도당해서 통제력을 잃은 것처럼 보이고, 그 틈을 통해서 관객은 언론인의 민낯, 언론의 역기능과 순기능을 관찰하며 영화에 개입하게 되지.

이 세 명의 역할을 기막히게 나눈 것도 대단. 마치 이드, 에고, 수퍼에고^^

이게 또 이 영화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인데, 객관적 대상으로서 영화를 바라보던 관객을 순식간에 극 안으로 끌어당기는, 그래서 현실과 영화 내부의 상황을 연결시키는 능력이 참 대단한 것 같아. 이런 몰입을 가능하게 돕는 요소로서 '아날로그 장비'의 기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요즘에는 아이폰 하나로 끝낼 수 있는 여러 일들 (통화, 문자, 촬영, 편집, 자막, 송출 등)을 한땀한땀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과정이 - 관객에게는 사건을 반추할 시간을 주고, 영화적으로는 템포를 조절하거나 사건들을 병렬 연결하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고통을 바라보는 것은 윤리적인 책임을 수반해야 한다"는 수전 손택 누님의 잠언은 미디어 시대의 모든 언론이 반드시 곁에 두어야 하는 문장이 되었어. 여전히 갈 길은 멀지. 현대에 이르러 미디어는 그 규모의 확장만큼이나 더 많은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비단 언론인 뿐만의 문제는 아니야. 개개인이 모두 독립 미디어 제작자가 되어버린 현재에는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끊임없이 살펴야 해.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한 영화인데, 극장에 오래 걸려 있진 않을 것 같아. 영화에 딱히 스펙타클한 요소는 없다 보니 TV로 보는 것도 무리는 없어 보이는데, 아무래도 극장이 주는 몰입과 집중은 어려울 테니, 늦지 않게 개봉관을 찾아 관람하길 추천해. 

ps. 포스터는... 좀 더 괜찮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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