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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변화 - 후배에게 반말할 것인가, 압존법을 버릴 것인가.

ARTBRAIN 2021. 3. 28. 03:18

라떼는 말이지. 회사에서 후배에게 반말하는 게 크게 어색하지 않았어. 

나이 차이가 꽤 나는 경우엔 첫마디부터 반말하는 상사들도 많았고, 적당히 나이가 많다 싶으면 한 달 안에 말을 놓는 게 보통이었지. 내가 느끼기엔, 2000년대 초반부터 그런 문화가 조금씩 사그라들지 않았나 싶은데, 거스 히딩크가 팀 내에서 반말 쓰기를 지시했던 그 즈음부터 존대의 효용에 대한 국가적인 재고가 있었다고 봐. 

 

이승우의 "나와 나와"로 생각해보는 히딩크 감독의 "축구장 존대 금지"

꽤 효과적이고 필요한 문화

www.huffingtonpost.kr

대기업에서 유행처럼 번진 '~님' 문화도 비슷한 시기였을 거야. 암튼 2000년대 초반은 상호 존중과 효율성의 관점에서 존댓말이 재평가를 받았던 시기였던 거 같아. (반말을 장려하기 위해, 또한 외국인과의 협업을 위해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유행이었는데, 지금은 꽤 사라진 듯. 이건... 좀 별로^^)

개인적으로는, 회사 생활에서 후배에게 반말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첫 회사부터 지금까지 쭈욱. 40대에 들어서고 부터는 3년 정도 함께 일한 후배나 20년 정도 나이 차이가 나는 후임에게 가끔 반존대를 쓰기도 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존댓말이 더 편해. 물론, 사적으로 친해진 경우는 가끔 반말을 하기도 하지. 완전히 반말을 튼 경우는 15년 지기 옛 동료 한 명이 전부고. 

동시에, 나는 압존법을 쓰지 않고 있어. 가끔 예외는 있지만.

이게 참 눈치게임인데, 가끔 필요한 경우가 있긴 하거든. 엄청난 직급 차이가 있는 데다, 상대가 딱 봐도 어르신인 경우, 또는 뭔가 압존법을 써야할 것 같은 찜찜한 분위기를 느끼면 자연스럽게 쓰게 되지만, 대개의 경우 모두에게 존칭을 쓰고 있어.

"회장님, 홍길동 대리가 제안한 걸 보시면~"
"OO님, 홍길동 님이/께서 제안하시는 건~"

아직 '~님' 문화가 어색하긴 하지만, 압존법을 피하기에는 편한 장치인 것 같아. 전자는 왠지 압존법이 자연스럽고, 후자는 직책이 없어서 모두 존대하는 것이 부드럽고. ('~님이/께서' 사용은 반반. 나는 사뭇 의도를 담아서 사용하는 것 같아.)

이게 2016년 뉴스라네 - ©SBS NEWS


이 포스팅을 적으려고 좀 찾아보니, 이제는 군대에서도 압존법을 폐기했다고 하고, 사회적으로도 없애려는 추세인가 봐. 

압존법이 학교와 가정으로 제한된 것이고 직장만이 그 영향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1992년 고시화된 <표준화법해설>에서는 "가정 내에서도 압존법을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된다."고 하여 사실상 압존법을 유명무실화시켰다. 2011년에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 언어 예절>에서도 비슷한 의견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가정에서도 그냥 끌리는대로 쓰자. 2011년 국어 교과서에서도 압존법을 설명할 때 압존법은 한국 현실에 맞지 않기에 변화하고 있다. 고 서술되어 있다. 여담으로 2014년 EBS 수능특강 국어 B형에서는 "가족관계에서는 적용할 수 있지만 가정 밖 사회에서는 적용하지 않는 것이 언어 예절에 맞음."이라 서술되어 있다. 그니까 써도 되고 안 써도 되는데 거의 사라지고 있다는 말.

나무위키 - 압존법 (링크)


반면에, 이렇게 서로 존대하는 것이, 히딩크의 반말 문화로 가는 장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조선시대에는 '상팔하팔'이라고 해서, 위아래 8살 차이까지는 친구를 먹었다는데 (아마도 반말을 했겠지? 아닌가?), 우리 사회가 다시 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는 선뜻 상상이 안되거든. 

만나면 나이 까는 문화 - ©SBS



그렇다고 해서, 압존법을 쓰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야. 오랫동안 함께 했던 동료들도, 내가 유난히 존대를 오래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더라구. 아마 우리나라 표준은, 친한 연하 상대가 허락하면 바로 말을 놓아도 되고, 상대가 연상이거나 덜 친하다고 생각하면 존대를 유지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어.

사실... 내 나이에 압존법을 챙겨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한국의 중년은 이유없는 권위가 생기는 계층이거든^^ 젊은이들은 피하고, 어르신들은 우리 세대에 관심이 없고. 관계맺는 사람들의 양에 관계없이 소통의 유형이 뻔해지는 나이라서 생각하는 대로 말해도 큰 부스럼이 생기지 않아. 종심소욕불유구^^

그래도, 가끔. 어느 것이 옳은 건지 한참을 생각하게 돼.  

의도하지 않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지. 잘못된 존중을 하지는 않았는지. 무분별한 존대가 공허한 제스처는 아닐지. 직책과 직급을 없애는 것이 업무 효용에 실질적인 이득을 주는 건지. 서양처럼 모두가 모두에게 반말을 하는 문화가 된다면, 상호 존중을 표현하는 한국 어휘는 어떻게 자리 잡을지. 언어가 의식을 지배하는 게 맞다면,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어떤 미래를 유추할 수 있을지.

ps.
이 블로그의 90%는 반말체를 사용하고 있어. 평소에 반말을 쓸 일이 없는지라, 그 쪽 어휘가 빈약하다는 생각이 있었거든. 논문처럼 팩트를 전하는, 어미가 '~다'로 끝나는 글은 불편함 없이 쓸 수 있는데, 이렇게 반말로 글을 쓰려면 여전히 어색해. 반말이 거슬리더라도, 문장이 어색하더라도 이해해 주길 바라. 나름 혼자만의 훈련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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