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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역사의 결정적 장면 - iPhone 1 vs. InfoBar 2

ARTBRAIN 2021. 5. 3. 03:21

2007년은 아이폰의 신화가 시작된 첫 해지만, 동시에 피처폰의 전성기이기도 했어.

이미 피처폰은 전화 기능을 넘어서서 mp3 플레이어이기도 했고, 영상 재생장치이기도 했으며, eBook 리더기이기도 했지. 기능을 탐구하긴 했지만, 부족함을 느끼는 상황은 아니었어. 폰은 원하는 만큼 작아질 수도 있었고, 다양한 모색을 할 수 있는 기술적 여유도 있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작은 시도들에 도취되어 있었지.

이때까지만 해도 IT/테크 쪽은 일본이 한국보다 나았어.

이미 아이팟이 mp3 시장을 장악한 시기였지만, 소니와 파나소닉 등은 여전히 건재했고, "정밀 기술 = 일본"이라는 공식이 유효하던 시절이었으니까. 비록 핸드폰 시장은 노키아와 모토롤라의 것이었지만, 일본은 워크맨 등을 만들던 노하우가 있는지라, 디자인만큼은 일본 나름의 매력이 있었지. (사실, 디자인의 토양은 한국보다 일본이 여전히 비옥하다고 생각해. 특유의 보수성이 일본 디자인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우하우스를 아시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과거를 생각하면 참 격세지감이 느껴지지.)

그 중 나오토 후쿠사와의 InfoBar2는 디자인의 세련됨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고 봐.

© Naoto Fukasawa Design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는 초콜릿폰이나 가로본능 등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발전했고, 일본은 전통적인 디자인 강국답게 기본 기능을 충실하게 구현하는 범위 내에서 디자인의 명징함을 구현하는 쪽으로 발전했는데, 디자인의 일체성을 강조하고,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내적인 응집력을 강화하여 매끄러운 하나의 덩어리를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했지. 어디서 많이 듣지 않았어? 바우하우스의 21세기 버전에 다름 아니지. 뒷면 스피커 홀을 봐. 디터 람스의 형태와 완전히 동일해. 이건 오마주라고 봐도 무방해.

© Apple, 이 때는 Apple Computer

 

사실 InfoBar2는 아이폰이 처음 발표된 해의 11월, 즉 아이폰보다 아홉 달 후에 출시되었어.

KDDI (InfoBar의 제작회사) 로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 유명 디자인 회사에 의뢰해서 완성도 높은 핸드폰을 만들었는데, 스마트폰이 새로 나왔다고 해서 이 제품을 파기할 수도 없었을 테고, 어쩌면 아이폰의 성공이 자신의 발목을 잡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당시에는 아이폰을 'pda의 한 종류일 뿐'이라고 평가하던 시선도 많았으니까.)

여전히 이 두 개의 제품을 비교해 보면, 디자인의 완성도로는 InfoBar2의 압승이라고 봐. 아이폰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을 이루지 못한 것에 반해서, InfoBar2는 인터페이스와 폰트 등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훌륭하게 통합되어 있으니까. (아이폰은 이후로도 4~5년 동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을 이루어내지 못했고, iOS7에 와서야 드라마틱한 통합을 이루지. 스캇 포스탈이 2선으로 물러나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조나단 아이브가 총괄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어. 오히려 mac OS의 경험이 통합의 발목을 잡은 게 아닐까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아이폰만을 기억해. 그리고 나는 이 두 핸드폰이 보여 준 간극이 무서울 정도로 날카롭게 느껴져.

© Sony

 

일본의 황금기 시절, 일본은 이런 식으로 확장했어.

카세트테이프에서 CD, MD, MP3로 발전하는 흐름을 좇아가면서도, 다양한 디자인을 적용하여 선택의 폭을 넓히는 방식으로 세계시장을 잠식해 본 경험은 — 일본의 자산이었고, 일본이 만들어낸 디자인 생산라인의 프로토콜이었지. (그리고 이런 전략을 2000년 전후의 한국 핸드폰 회사들이 차용했고.) 워크맨이 카세트에서 시작해서 CD, MD, MP3로 확장 가능했던 것처럼, 스마트폰의 기능도 그렇게 흡수할 수 있었으리라고 믿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피처폰의 확장을 통해 스마트폰을 구현할 수는 없는 거잖아?

© kddi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기존의 전략을 고수하는 것 같아. 헤리티지를 계승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InfoBar 1,2의 형태적인 완결성이 스마트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무려 2018년에 출시한 InfoBar XV는 기존 라인업의 형태적인 요소만을 차용했을 뿐, 기능적인 적응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아. (여전히 갖고 싶은 외형이지만, 소프트웨어는 글쎄...) 

만일 이 때, 일본이 보다 창의적으로 새로운 핸드폰의 패러다임에 적응했더라면 어땠을까.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일본은 20년 이상 이어지는 장기불황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한국은 IT를 기반으로 경제발전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 *오직 일본의 경직성이 한국의 발전을 만들었다고 오독할지도 모르겠네. 결과를 만든 건 우리나라의 능력이지만, 빈틈을 만들어 준 건 일본의 실수라는 뜻일 뿐이야. 한국인으로서는 다행이지만, 일본의 디자인 계통이 깨지는 건 동종 업계 사람으로서는 아쉬운 일이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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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웹서핑을 하다가 InfoBar2를 보고, 감상에 젖어 기록을 남겨.

이 결정적인 장면은 - 디자인을 맹목적으로 쫓는 것의 위험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창의력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드러내는 몇 안 되는 사례이기도 해. 혹은, 우리가 '디자인'이라고 말하는 것의 참의미를 보여주는 사례일 수도 있고.

결국은 경계심 때문에 이 기록을 남기는 거지. 나 역시 일본과 같은 실수를 하며 살고 있진 않은지. (40여년간 이와 비슷한 실수를 꽤 많이 한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이 편치 않아. ^^)

 


 

* 나오토 후쿠사와는, Muji의 유명한 제품인 '벽걸이 CD'를 디자인한 사람이고, kddi는 물론, Muji, ±0 등 여러 회사를 오가면서 각 회사에 기념비적인 제품을 만들어 준 디자이너이야. 개인적으로는, 이 분이 하라켄야보다 훨씬 더 우수한 역량을 갖고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 분의 작업을 존경하기는 해도 …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하는 디자이너, 즉 상위 개념의 디자인을 해결하지 못하는 디자이너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이 분의 현재 모습이 처연해 보이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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