ときめ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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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 of UX

ZEN of UX. 25 - 네이버 개편에 부쳐

ARTBRAIN 2023. 6. 2. 19:28
글 안에서 "(링크)"는 외부 링크고, 밑줄은 내 블로그 글로 연결돼.

네이버 메인화면이 또 개편을 했는데, 이번엔 많이 달라. (링크)

네이버 메인화면 개편 컨설팅을 2016년에 진행했던지라, 그 이후로 네이버 메인 개편 기사를 주의 깊게 보게 되는데, 이번의 개편이 유난스러운 점이 있고, 뭔가 인사이트도 있는 거 같아서 간단히 정리해 봤어.


1. 디바이스 화면 너비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다.

A.  고정형도, 반응형도 아닌 적응형(adaptive) 화면 구성을 채택했어.

네이버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야. 내가 컨설팅을 할 때도 적응형을 제안했을 때는 '웹표준이 확실하지 않고 모든 유저를 포용할 수 없어서' 사용하기 어렵다는 피드백을 받았는데... 그 때와 지금 무엇이 바뀌었길래 갑자기 적응형 화면을 채택했을까.

적응형은 반응형과 달리, 화면이 넓어진다고 콘텐츠 개수가 늘어나지 않아. 그저 화면 구석구석을 다 활용하도록 적당한 레이아웃, 정보 위치 등이 바뀔 뿐이지. 이건 각 항목의 개수를 유동적으로 운용하기 어려운 네이버의 특성에 적합해. 개수든 크기든 영역이든 숫자가 딱 정해져 있는 구조가 필요했던게지. 배너를 동적으로 구조를 바꾼다던가, 유저에 따라 보이는 정보 개수가 달라진다거나 하는 건 네이버의 성격에 맞지 않아. 네이버에겐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있거든. 내부에도 외부에도.

네이버 메인화면은 사실 거대한 광고판이잖아. 광고 영역은 물론이고, 뉴스, 블로그 포스팅, 쇼핑 등 모든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전체 클릭 수를 좌지우지할만한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어. 그러니까 메인 화면을 둘러 싼 알력 다툼(?)이 엄청날 거야. 사내 부서들을 예로 들어보면 - 메인 화면을 나눠가진 a~f 부서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제한된 화면에 반응형을 적용하면, 여러 컨텐츠를 골고루 분배하는 데 의도치 않은 잡음이 생길 거야. 작은 화면에서는 e, f의 콘텐츠가 보이지 않다가 화면이 커질 때만 보인다고 하면, 그 부서의 총수익에 변화가 생길 거잖아. 네이버는 사실 회사 규모의 여러 서비스들이 한 지붕 아래 모여있는 구조인데, 어떤 콘텐츠가 밀려난다는 건 그 회사의 수익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 쉽지 않지. 

또한 외부의 협력업체나 광고주들에게 네이버만의 특수한 광고 포맷을 강요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을 거야. 광고야말로 네이버의 전통적인 수입모델인데, 거기에 굳이 장벽을 칠 필요가 없잖아? 광고 쪽에서 경쟁하고 있는 구글 애드 등은 더 쉽게 광고를 띄울 수 있도록 (심지어 이미지 퀄리티까지 무시해 가면서) 제작 난이도를 낮추고 있는데 말이지.

기존 이미지 배너 대신 밀고 있는 형태인데... 내 정보(로그인) 영역을 저렇게 낮추는 게 좋은 걸까?

 

동시에, 네이버 메인은 전체가 모두 버튼이야. 그래서 네이버 메인이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그 자리에 그 버튼이 있다'는 유저의 기억을 최대한 지켜주어야 한다는 점인데, 그러다 보니 한 정보 유닛이 계속 확장되는 걸 경계해야 하지. (그럴 수 없는 구성이기도 하고.)

근데 지금, 내가 한 말이 서로 충돌되는 것 눈치챘어?

네이버에겐 버튼의 위치 기억이 중요하다고 말했으면서, 화면의 영역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구조를 변형하는 '적응형' UI라... 서로 좀 모순적이잖아. 그래서 말인데 — 이번에 적용한 적응형 UI는 사실 없어도 되는 거였다고 봐. 미래를 위한 포석이긴 하지만... 굳이? 지금? 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래 이미지를 보면, 걍 캘린더/위젯만 우측으로 끌어올린 것에 지나지 않아. 가장 이해관계가 적은 사소한 기능들. 이게 어떤 사용성 개선인지 잘 모르겠어. 그냥 단순히 - "2560px 모니터를 쓰는데 굳이 스크롤이 생기게 해야 돼?"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아.

2단과 3단 구성 변화

B. 모바일 리소스와의 호환

당장은 적응형 사용에 의미가 크진 않지만, 약간만 조작을 해 보면 앞으로 네이버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어. 네이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어발 기업이잖아. 카카오에 그 지위를 뺏겼... 그렇기 때문에, 이미 수많은 화면이 앱으로/웹으로/모바일웹으로 - UI들이/GUI들이/그래픽들이 만들어졌어. 그걸 통일화하고 싶은, 원소스-멀티유즈하고 싶은 욕구가 왜 없겠어. 

롤오버를 하거나 메인 안에서 새 UI를 띄우는 대개의 모습은 딱 모바일화면의 생김새야. 이렇게 만들면 모바일(웹/앱)에서 만들어 둔 UI/GUI를 그대로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 웹보다 모바일을 더 많이 쓰는 요즘의 유저 입장에서도, 모바일에서 본 형태와 같은 화면을 데스크탑에서 보고 조작하는 게 더 익숙할 거야.

일례로 햄버거는 앱의 그것과 거의 비슷하고, 알림은 거의 똑같아. 
여기서 또 자랑질을 하자면, 2016년 메인개편 때 내가 제안했던 '모바일 단위의 화면구성'과 매우 비슷한 부분이 있지요. ^^

물론, 네이버가 훨씬 예쁜 건 인정.

물론, 초기단계라 아직 갈 길이 멀어. 지금쯤 데스크탑과 모바일에서 완전히 동일한 사용성+look을 가지는 호환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

흥미로워.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2. 색상을 더 빼고, 구분선도 가급적 긋지 않고


A. 회색을 없애기 위한 부단한 노력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네이버는 영역이 다를 때마다 선을 그어서 구분해 주었어. 선으로 도저히 나눌 수 없으면 회색 면을 여러 개 두어서 구분해 주기도 했지.

그런데 서비스가 계속 고도화되다 보니, 분할이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지게 되었어.
박스 안의 박스, 항목 옆의 항목, 버튼과 그림, 숫자와 숫자... 모든 걸 선으로 나눴고, 아래 이미지처럼 되어버렸지.

선과 회색의 향연

이렇게 나누는 건 전형적인 '픽셀시대'의 디자인이야.^^ 72dpi의 모니터에서 저 1px짜리 구분선은 확실히 도드라졌을 테고, 선으로 둘러싸인 흰 면은 개방된 영역보다 살짝 올라온 것처럼 느껴졌을 거야. 

하지만 웬만한 디바이스가 200~400dpi를 사용하는 요즘에는, 1px로 그린 선도 면으로 보이게 되고, 회색 형태는 예전보다 더 세밀하게 나뉘어져서, 옛날에 만든 큰 간격의 회색계조가 무겁게 다가오게 되었지.

회색을 줄이는 것은 시대적인 요구여서 '네이버가 잘했네' 싶지는 않은데, 구분을 위해서 슬래시를 쓴 건 참 재미있었어.

아직 회색면(우측)에는 가 쓰이고 있네

슬래시라니! 뭔가 옛날 크롬에서의 탭 모양이 연상되기도 하고, 굳이 이렇게까지 나누어야만 속이 시원했을까 싶고. 탭 구조를 매우 싫어하는 나로서는 "애초에 저 구조를 다르게 만들어야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탭을 써야만 한다면... 슬래시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재밌잖아. 저 슬래시도 실제 슬래시(글자)로 썼다면 리소스도 줄이고 좋았을 텐데. 그림(svg)이어서 좀 아쉬워.

B. 하지만 한계는 여전

이런 건 좀 안타까워. 네이버의 메인화면 디자이너에게 연민이 생길 정도.

왼쪽 이미지는 (예전보단 훨씬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회색계조를 통한 화면 분할을 시도한 거라 창의력 없는 디자이너를 비난하고 싶은데, 우측 이미지처럼 메뉴를 두어야 하는 사업적인 상황, 그리고 그 사업적인 상황을 개선하지 못하는 디자이너의 지위에 대해서 아쉬움을 느껴. 디자이너는 왜 이런 것에서 제대로 힘을 쓸 수 없을까... (그래도 우하단에 미세한 원은 빼도 됐을 텐데?, 그리고 색면으로 만족 못해서 꼭 선을 한 번 더해주는 건 버리기 힘든 버릇인 거 같아.)

 

3. 라운딩의 사용

라운딩도 모바일의 영향이겠지. 라운딩의 사용이 전체적인 디자인의 밀도 감소와 어울려서 화면을 좀 더 쾌활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데스크탑에 적합한 Radius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시도한 것은 참 잘한 일이야. 

그런데, 살짝 아쉬운 건 메가메뉴인데,

이게 미적으로 아름다운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앱에서 잠깐 시도하고 더 발전시키지 못한 스쿼클을 계속 가져온 것은 이해하기 어려워. 스쿼클이 딱히 속성 정의도 아니고. 앱 아이콘과도 딱 떨어지지 않으니 '앱'의 표현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메인화면의 문법에 스쿼클은 아무런 도움도 의미도 없는 것 같아.


4. 총평

우선 전제할 것은, 이렇게 바꾸는 것이 (다른 회사도 아니고 네이버는 더욱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 고생했어 모두. 단순히 갔어도 될 일을 의욕적으로 바꾼 시도에 대해서 박수를 보내. 

내 주제에 총평씩이나 싶지만, 누구나 의견은 낼 수 있는 거니까. ^^

A. 네이버는 지난 20년 간 비슷한 패턴으로 일하는 것 같아. 긴급한 일을 진행하면서 어수선해지면 한 번 싹 정리하고, 또 방만하게 막 그려대다가 또 한 번 싸악 정리하고.

뭔가 불완전하긴 해도, 이만큼 정리하는 회사도 흔치 않아. 대부분의 회사는 BI/CI 바뀔 때 한 번씩 하는데 비해서, 네이버는 그 주기도 빠르고. 이런 속도감/통일성은 워터폴의 장점이기도 한데, 현재의 네이버 구조를 감안하면 참 대단한 능력이라 생각해. 필요에 따라 터져나오는 개선이 아니라, 일정에 따라 '함 해볼까' 하며 개편하는 느낌이 없진 않으나... 기분 탓이겠지. 

B. 가장 큰 아쉬움은, 여전히 시각적인 효용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맘이 개운하지 않아. 원소스-멀티유즈든 형태적 일관성이든 다 좋은데... 궁극적인 질문은, 이게 데스크탑 환경에서 적합한 UI로 최적화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 가장 근본적으로 고려했었어야 하는 건 마우스와 손가락, 펜슬의 조작적/인지적 차이였는데, 이번 개편이 이 UX적 차이가 UI에 묻어있지 않아 보이는 건 치명적인 잘못이라 생각해. 또한, 데스크탑 웹의 구태한 구조와 거기에 붙어 있는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모바일을 도입하려고 아주 표피적인 - 말풍선을 통한 오버레이 - 해결책으로 갈음해 버렸어.

머랭을 만들려면 충분히 섞어야 하는데, 만들다 말아서 흰자와 노른자가 모두 보이는 느낌이야. 물론 과정이자 과도기이겠지만, 정말 시각적인 효용만을 고려했다면 괜찮은 미래를 기대하긴 어려워.

C. 이건 '개편'에 기대하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언젠가 누군가 건드려야 하는 문제인데 : 네이버가 아직도 검색 서비스인가? 하는 문제.

네이버는 포지션을 변경할 때가 되지 않았나? 여전히 많은 유저들이 검색할 게 생기면 네이버를 찾는 건 알아. 하지만 네이버의 큰 흐름이 어디 그런가. 이미 내부에서는 '우리는 검색 서비스 포털이 아니다'라는 말들이 돌지도 몰라. 하지만, 내부의 누군가가 화두를 던지지 않으면 네이버는 애매한 포지션으로 계속 흘러가다가,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종말을 맞을지도 몰라. 

언제까지 콘텐츠를 게시(만) 하고, 정보를 찾아가야만 하고, 두루뭉술하게 여러 버튼을 나열하고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 모드로 가는 건지 모르겠어. 

되게 구태한 예제인지는 모르지만, 이제 GPT도 있고, AR/VR도 있고...^^ 네이버의 랩은, R&D 잘 돌고 있는 걸까? 메인에서 그런 단서가 보이지 않는 건 그저 내 눈이 아직 뿌옇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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